우유 따르는 여자
김정기
아직도 여자는 우유를 따르고 있다.
삼백 년도 넘게 따른 우유는 넘치고 넘쳐서
어디로 해서 어느 강으로 몸을 섞었을까.
왼쪽 창문을 통해 들어온 태양은 여자의 왼쪽 팔에서 튀고
짙은 남색 앞치마에 안긴다.
그리고 머릿수건 뒤에 가서 빛으로 조용히 머문다.
허름한 부엌 벽 위에 걸린 바구니 속에 담긴
곡식은 아마 지금쯤 싹이 나서 셀 수 없는 낱알을 만들었겠지
그러나 보았다, 식탁보 밑에 깔린 두꺼운 어두움
알 수 없는 그 나라의 냄새가 풍겨온다.
베르미어*는 신들린 붓으로 고요를 만들고
순하게 네모 반듯한 감옥에 서서
끝없이 우유를 따르고 있다
그 소리가 지금 나의 잔에도 스민다.
윗저고리의 황홀한 겨자 빛깔이 나부껴온다.
썩지 않는 빵들이 식탁 위에서 계속 발효되고 있다.
*1600년대 네덜란드 화가
© 김정기 200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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