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잎새의 가을 / 김정기

서 량 2022. 12. 3. 18:24

 

잎새의 가을

 

                                  김정기

 

 지금 떨고 있다

 햇살에 꽂히려고 몸을 비틀면

 더욱 눈부시게 떨리는 침엽수 뾰족한 잎.

 

 한 세상 부딪치며 잡던 손, 한번 다시 스치기만 하고

 놓아 줄 것도 없는 키 큰 나무가 무서워

 허공을 뛰어내리는 잎새의 곡 소리

 안개도 문을 닫고 아는 기척도 없다. 

 분배된 땅에는 이름 짓지 않은 하늘이

 여전히 푸르다.

 

 빛나는 지난 날은 휘어서 삭아가고

 떠나는 옷자락 부여잡고 엉킨 실 풀어놓으려 하니

 어느 거대한 바람이 번져서 물결이 되어

 후두둑 지난 날 빗방울도 데려오는 기나긴 잠이 든다.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눈초리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들켜버린 잎새의 가을.

 

 조용하다, 적막조차 떨린다.

 

© 김정기 200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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