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는 김소월이나 서정주 혹은 윤동주의 시를 전신이 비비 틀릴 정도로 좋아했다. 시에 대한 깊은 안목도 없던 때라 그들의 대표작 같은 시 한 두편, 그 중에서도 말 몇마디가 마음에 들면 소규모의 전율이 오곤 했지.
대학시절에 현대시 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에 시 월간지를 탐독하면서 부터였어. 그러면서 윤동주의 <서시>였는지가 슬슬 싫어지더라. 자기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귀절이 안 좋게 느껴지는 거야. 그건 너무 욕심이 지나치거나, 자기의 양심을 과신하거나, 무척 안쓰러운 분위기로서 독자에게서 점수를 따겠다는 속셈으로 보였어. 심지어는 그런 엄청난 발언이란 일종의 위선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부끄러운 짓을 본의 아니게 할 수도 있을텐데 이것은 무슨 철딱서니 없는 발상인가.
김소월의 시에서 풍기는 남녀 연애감정에 대한 넋두리도 물론 그때는 시대의 첨단이었겠지만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기분이었다. 도대체가 고전시인들은 그저 입만 뻥끗하면 달이 어떻고 별이 어떻고 하는 천문학자 티를 내지를 않나. 게다가 바람이 어떻고 구름이 어떻고 나무잎이 어떻고 하며 주로 야외(野外)에 눈독을 들이면서 고작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에 역점을 두는 거야. 마치도 인간의 감정은 그것이 다라는 듯이.
요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참 좋게 느껴지던 시가 다시 곰곰히 읽어 보면 이제는 별로다. 몇 년 전에 써 놓은 내 자신의 시를 다시 읽어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그 당시에는 스스로 코를 벌름벌름하면서 애지중지 좋게 뵈던 내 시가 이제 와서 순 엉터리로 보일 때는 정말 우리들끼리 얘기지만 죽고 싶은 심정이다. 시를 보는 안목이 점점 변해서일까. 한국 시의 유행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꾸 변하기 때문에 시에 대한 내 미적감각이 우왕좌왕하기 때문일까.
다시 한 번 시도 사람 같다는 생각에 잠긴다. 사람도 좋았다가 싫어지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싫어할 만한 상황이 거듭돼도 여전히 정이 가는 사람이 있고 소가 닭보듯 덤덤하면서 크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처음에 달콤하게 믿었다가 나중에 쓰라린 배신을 당하는 인간관계도 있겠지.
시도 사람도 시시때때 변한다. 시도 사람도 시시때때 변덕을 부리면서 유행처럼, 강물에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낙엽처럼 어디론지 흘러간다. 지금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 서 량 200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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