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장남이라
할아버지 제사를 내 나이 일곱 살 때 처음 지낸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이 추석날이었는지.
크지도 않은 상에 꼭대기를 깎은 사과, 배, 날밤, 강정,
그리고 조기 두 마리에 오른쪽 맨 옆으로
구운 오징어가 접시 위에 덜렁 놓여 있었다.
빛 바랜 사진 속 할아버지 얼굴이 그렇게 엄격하고 무서웠어.
고봉밥에 직각으로 꽂아 놓은 놋수저도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세뱃절하고 또 하고 엉덩이를 하늘로 하고 또 엎드리고
하면서 그 사이에 배가 고프기 시작한 거야. 군침이 꿀떡꿀떡.
음복을 할 때 구운 오징어는 내 차지였다. 혼자 오징어 한 마리
뚝딱 다 해치웠지. 깎아 놓은 날밤도 몇 개 먹은 것 같은데.
© 서 량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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