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수다, 담론, 게시

|잡담| 제삿상의 오징어

서 량 2007. 9. 21. 11:50

아버님이 장남이라

할아버지 제사를 내 나이 일곱 살 때  처음 지낸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이 추석날이었는지.

 

크지도 않은 상에 꼭대기를 깎은 사과, 배, 날밤, 강정,

그리고 조기 두 마리에 오른쪽 맨 옆으로

구운 오징어가 접시 위에 덜렁 놓여 있었다.

 

빛 바랜 사진 속 할아버지 얼굴이 그렇게 엄격하고 무서웠어.

고봉밥에 직각으로 꽂아 놓은 놋수저도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세뱃절하고 또 하고 엉덩이를 하늘로 하고 또 엎드리고

하면서 그 사이에 배가 고프기 시작한 거야. 군침이 꿀떡꿀떡.

 

음복을 할 때 구운 오징어는 내 차지였다. 혼자 오징어 한 마리

뚝딱 다 해치웠지. 깎아 놓은 날밤도 몇 개 먹은 것 같은데.

 

 

© 서 량 2007.09.20

'잡담, 수다, 담론, 게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담| 투명한 개구리  (0) 2007.10.01
|잡담| 행복하라는 말  (0) 2007.09.27
|잡담| 좋다가 나빠지는 詩  (0) 2007.09.15
|잡담| 좋은 詩와 나쁜 詩  (0) 2007.09.14
|잡담| 양키들  (0) 200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