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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갈이 / 김정기

흙 갈이 김정기 꽃나무도 나이 들면서 헛소리를 한다. 십 수 년 묵은 집을 털고 새 흙에 심겨지니 이웃에 낯가림을 하면서 떠난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 밤새도록 흩어진 친구를 부르다 끝내 실어증을 앓는다. 연한 뿌리들이 감추어둔 얼룩을 찾아 꿈틀대다 꺾이고 상하고 오래된 것들이 살갑지만 낯선 것은 서툴고 불편하다 그래도 새것은 눈부시다. 어두움에 길든 침묵은 햇볕에게 말을 건다. 질긴 끈으로 묶였던 시간들이 토막 나 뿔뿔이 달아나고 뒤섞여도 당신은 거기에 있었구나 창공에서 쏟아진 이름들이 숨긴 어제와 손잡아도 끌어안아도 흩어져버리는 이 땅 한 번쯤 뒤돌아본 당신의 흙 묻은 얼굴 그러나 계속 당신을 향해서만 고개 돌리는 타향 떠밀려온 흙은 그나마 화분에도 못 담기고 버려져 엉겅퀴를 키우지만. 장미꽃과 잡초가 ..

지구의 물 / 김정기

지구의 물 김정기 당신의 하늘에 남보라에 잉크를 풀었다 허리춤이 살아나는 관능의 물이 호머*의 포도주가 되어 지중해를 채웠고 물가루가 당신의 멋에 분해되어 몸속으로 스며들 때 어려운 색깔이 숨죽이며 번져 당신은 한 방울 유쾌한 뉴욕의 물. 마음속에 숨어있던 파인 구멍을 가볍게 덮어주는 달빛 온기를 잃지 말라고, 물의 씨를 말리지 말라고, 옥구슬이 되어 분만 되는 물방울은 여자에 엮이어 땅으로, 흙으로 스며든다. 스며든다. *19세기 미국화가 © 김정기 2010.07.27

숨은 새 / 김정기

숨은 새 김정기 창공이 무섭다. 썩은 어둠을 두르고 작아지는 날개를 움직인다. 발톱에 찍히는 바람의 무늬 오그라들어 점 하나로 남는 공간. 숨어서 껴안는 작은 그림자들이 빛나고 우리가 함께 버렸던 하늘이 흙이 되었던 비밀을 일러주는 색깔들. 뒤꼍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다시 자라는 날개가 꿈틀거린다. 달빛의 힘줄을 딛고서. © 김정기 201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