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9

그늘의 색깔 / 김정기

그늘의 색깔 김정기 오랫동안 그늘에 있다 보니 그늘에도 색깔이 보인다 되도록 노오란 그늘에 머물러 했지만 언제나 바탕은 진회색이었다 검은 바위가 들어앉은 듯 무거웠지만 가는 손가락을 펴 뒤집으니 밑둥에는 아지랑이가 묻어 있었다 반짝이는 진흙 가루로 얼굴을 치장하니 고향집 우물에 나르시스가 된다 외로움은 번져오면 색깔이 되는지 장미 가시가 등줄기에 박혀 스스로 그늘을 찢고 숨어 사는 집에 색칠을 한다 © 김정기 2020.03.21

모래장미 / 김정기

모래 장미 김정기 골수에 단맛 다 빨리고 가슴에 꽂은 장미 사람들은 절하고 울음 울고 떠나지만 시선이 꽂히면 와르르 무너지는 꽃. 비단 자켓에 달았던 코사지 향기마저 갖추었네. 바위 결에 돋아난 그림 한 장 어두움은 언제나 당신 안에 스며들어 분명히 꽃이었던 자리에 피어나는 허공 물결을 잡으러 떠내려 왔던 개울가 자갈에서 꽃이 보이는 날 모래 장미를 달고 외출하면서 조금씩 더 수줍어하리 수집음이 슬픔이라 한들 당신이 나를 용서 할 수 있겠나 어머니 적삼에 달았던 꽃도 이제 보니 한 웅큼의 흰 모래였네 매운 무를 씹어 삼킬 때마다 꽃을 달아 주시던 모래 손. © 김정기 2010.10.12

|詩| 첩첩 산중

꿈 속에서 꿈을 꾸고 그 꿈 속에서 또 꿈을 꾸다가 꿈들이 겹겹이 가냘픈 장미 꽃잎처럼 서로를 첩첩이 에워싸고 제각각 소망을 내세우며 새벽 이슬 차가운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다니 당신 심성이 장미라고야 함부로 말 못하지 차분한 생각도 덤벙대는 욕망도 하나씩 속에 하나씩들 더 있고 그 바닥으로 당신이 미처 눈치 못 채는 사유와 소망이 도처에 흩어져 속속들이 숨어 있다니 꿈의 그림자를 일일이 다 분석하려고 파고들자니 끝도 없고 정신도 없어진다더니 정말 정말이라니 © 서 량 2008.10.09

2008.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