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 9

|詩| 맨발

맨발 -- 마티스의 그림 “담쟁이덩굴 가지를 든 여자”에게 1906 앞쪽 오른쪽 절반을 잎새들이 기어오른다 그늘에 서서 눈길을 아래로 던지는 여자 당신 정신상태 90%가 보라색 도는 자줏빛 배 왼쪽 옆구리 절반이 더워져요 눈썹도 빨개지네 詩作 노트: 37살의 마티스가 당시의 시대정신을 추종한다. 나도 그 나이에 좀 그랬던 것 같은데. 여체를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이 간질간질할 것이다. 옆구리는 반만 달아오른다. © 서 량 2023.05.31

잎새의 가을 / 김정기

잎새의 가을 김정기 지금 떨고 있다 햇살에 꽂히려고 몸을 비틀면 더욱 눈부시게 떨리는 침엽수 뾰족한 잎. 한 세상 부딪치며 잡던 손, 한번 다시 스치기만 하고 놓아 줄 것도 없는 키 큰 나무가 무서워 허공을 뛰어내리는 잎새의 곡 소리 안개도 문을 닫고 아는 기척도 없다. 분배된 땅에는 이름 짓지 않은 하늘이 여전히 푸르다. 빛나는 지난 날은 휘어서 삭아가고 떠나는 옷자락 부여잡고 엉킨 실 풀어놓으려 하니 어느 거대한 바람이 번져서 물결이 되어 후두둑 지난 날 빗방울도 데려오는 기나긴 잠이 든다.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눈초리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들켜버린 잎새의 가을. 조용하다, 적막조차 떨린다. © 김정기 2009.09.25

|詩| 따스한 가을

바람 부는 오후에 간들간들 떨어지는 잎새에서 비릿한 향내 피어난다 이거는 중세기 시절 몸집 하나 우람한 흑기사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던 송충이 속눈썹에 코가 알맞게 큰 귀부인의 아득한 몸 냄새라고 우기면 고만이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거 말고 아무런 딴짓을 못하는 저 갈색 잎새들은 지들 몸에서 무슨 향내가 나건 말건 도무지 알지 못하지 하늘 청명한 시각에 어둠이 한정없이 깔린 땅으로 나 몰라라 하며 아래로 아래로만 떨어지면 고만이다 곧장 © 서 량 2022.10.8 시작 노트: 가을이면 꽃도 꽃이지만 잎새에 눈길이 자주 쏠린다. 가을은 내 청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중세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말이 시각(視覺)으로 돌변한다. 가을이면 몸의 오감(五感)이 달아오를 뿐, 내가 굳이 가을을 탄다는 말은 ..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