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7

빨간 사과 / 김종란

빨간 사과 -- 시리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남기고 가신 소설가 김지원님께 김종란 녹음 우거진 공원으로 검고 긴 머리 휘 날리며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녀의 눈은 풍성한 머리 바로 밑에서 꿈꾸고 문자는 두 손에 가슴에 춤추는데 스무 살의 그녀는 갔다 시린 손으로 따뜻한 가슴을 안으며 바람 부는 곳으로 있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남겨 놓았다 그녀는 언제나 스무 살이다 백 년의 베개머리에서 미리 온 가을 햇살처럼 환하다 백발이 무성 하여도 그 가을 햇살에 찍힌 세상은 한 입 베어 무는 빨간 사과 시어서 눈물 맺히며 웃음 환하다 © 김종란 2013.02.05

|컬럼| 398. 실실 쪼개기

제임스가 병동 복도에 서있다가 느닷없이 으흐흐 하며 크게 웃는다. 징글맞고 꺼림칙한 웃음 소리! 아무리 정신질환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으흐흐라는 의성어는 영어에 없다. ‘ha ha’가 있고, 산타클로스의 웃음소리인 ‘ho ho ho’가 있을 뿐이다. 하하, 허허, 헤헤, 호호, 후후, 히히, 킬킬, 껄껄, 낄낄, 푸하하, 으흐흐, 으하하, 이히히, 큭큭, 킥킥, 그리고 인터넷 채팅방에 굴러다니는 ‘ㅎㅎ’, ‘ㅋㅋ’ 같은 다채로운 우리말 앞에서 영어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동물 신경과학자, 야크 팽크셉(Jaak Panksepp: 1943~2017)은 2003년에 실험실 쥐의 배를 간질이면 쥐가 크게 웃는다는 사실을 녹음으로 증명했다. 동물도 소리내어 웃는다. 원숭이, 돌고래, 고양이, 개도 당신과 나처럼..

|詩| 손바닥

어느날 아침 산들바람이 회오리바람으로 변했습니다 마치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바닥에서 큰 산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한폭의 화려한 풍경화입니다 별똥별이 흐르르 스쳐가는 황무지에서 놀라지 마십시오라고 누군지 귓속말 해 주는 듯한 그런 서늘한 바람이 내 손바닥에 일고 있습니다 박수의 따가움과 더할 수 없는 마음 밖으로 기어이 터지는 웃음처럼 눈물이 번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한 순간이다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어느날 아침 산들바람이 회오리바람으로 변했습니다 마치도 더 이상은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바닥이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 서 량 2000.11.18 (문학사상사, 2001)에서

발표된 詩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