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상현실 내 밑바닥에 누워있는 당신의 진실을 보았다 한편의 시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눈을 감는 순간 매서운 채찍질과 빠르고 음산한 배경음악에 박자 맞추어 온몸으로 눈보라를 뚫고 질주하는 저 북극의 개, 울부짖는 늑대 떼보다 몇배 더 성급한 개떼, 내가 개 여러 마리로 길길이 둔갑하여 썰매를 끌고가는 흑백의 화면을 보았다 한밤중에 한껏 지구를 가로지르고 싶은 내 주인의 희열을 위하여 © 서 량 2017.03.30 --- 2020.06.07 詩 2020.06.08
|컬럼| 300. 위시본(Wishbone) 오래 전 딸과 함께 한 추수감사절 디너에서 터키의 'wishbone'을 둘이 잡아당겨 부러뜨렸던 적이 있다. 위 아래를 꾹 눌러 놓은 'V' 모양의 터키 뼈가 뚝 부러지자 서로 손에 쥔 가느다란 뼈의 길이를 대조하면서 더 긴 뼈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행운이 부여된다는 미신을 믿기로 우리는 다짐..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7.11.27
|컬럼| 193. 가을, 그리고 그리움 아무래도 가을을 그리움의 계절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창 밖의 떡갈나무들이 기우뚱 허리 숙여 잎새를 떨구는 10월 하순쯤 짙푸른 하늘을 힐끗 올려보면서 당신은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 치솟아 오를 것이다. 그런 그리움은 일상적인 마음으로서는 얼른 알아차리기 힘들고 신비스러..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3.10.21
치과 의자 / 최양숙 치과 의자 최양숙 염증을 가렸던 립스틱을 지운다 내 안의 깊은 곳을 드러내야 할 때 눈을 감을까 뜰까를 고민한다 세속의 욕망을 간직한 티끌은 언제나 또 그만큼 그 자리에서 신경을 건드린다 거품 가득한 수세미로 떠오르는 얼굴을 지운다 아스팔트를 파내는 치열함으로 기억을 새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12
흔들의자 / 조성자 흔들의자 조성자 노년의 무릎 위에 소년이 앉아 파닥파닥 흔들리네 물살을 헤치듯 날렵하게 권태를 헤집고 나온 소년 한 겹 한 겹 저미며 제 생의 속살을 파고드네 돌아가는 길은 느리지만 생생하네 언젠가 본 듯한 풍경들 금방 알아보는 얼굴들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네 노을 빛으로 치솟던 욕망의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02.16
행성 이야기 6 / 송 진 행성 이야기 6 송 진 한 때는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한 통속이었다지 하늘의 별은, 땅의 별들이 심한 갈증으로 모래알을 토해내자 생명수가 터졌다는 곳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안티고네*가 굶주린 새들의 먹이감으로 버려진 오라비의 시신을 땅 속에 수습하는 밤엔 더 많은 은하수를 그곳으로 흘려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