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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자율신경

자율신경 -- 마티스 그림 “숲속에서”의 여자에게 (1922) 숲의 일부분 숲 전체 서늘한 숲 나무들 키가 크다 참 시원해, 그치? 나무들 사이 청색 하늘로 날아다니는 精靈 날개 없이 마음 놓고 쏘다니는 精靈 숲속 살색 담요 위에서 책을 읽는 여자 마음 詩作 노트: 마티스는 화폭에 여자를 아주 작게 그릴 때가 많다. 그림 속 여자가 자연이 시사하는 自律性의 내막을 알아내기 위하여 하늘을 날아다닌다.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 서 량 2023.07.23

나무를 베는 사람 / 김정기

나무를 베는 사람 김정기 날마다 나무가 쓸어진다 날카로운 전기톱에 소리도 못 지르고 쓸어진다 가끔 물위에 떠오르는 나무 가지를 건지며 그가 물 속에서도 톱질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래도록 나무를 베면서 나무냄새 외에는 맡지 못해도 그는 언제나 고요하고 환하다 아주까리 꽃대궁이 솟아 오르던 날 저녁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지고 톱밥이 온통 마을을 덮는데 그는 여전히 빛나는 톱을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나무를 벤 자리에 새 움이 돋고 숲을 이루어도 그 사람은 계속 나무를 벤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푸르다 그는 나무다 가까이서 보는 그는 날선 톱이다 오늘도 바람으로 나르며 나무를 벤다 © 김정기 2010.05.17

정적 / 김종란

정적 김종란 맑고 파란 정적(靜寂) 물방울 소리 들린다 드러난 심장 정적은 숨쉬고 있다 정적은 쏟아진다 눈 내린다 어두운 숲 듬뿍듬뿍 지워 버리는 흰 페인트 눈 내리는 숲, 숲의 노루처럼 나의 근심이 지난다 총알 보다 빠르게 꿈인듯 뛰놀다 간다 소리 없는 거미집 빛이 일렁이며 놀다 간 반짝이는 그물, 가득 주름잡힌 마리아 테레사의 얼굴이 치마끝에 흰 페인트를 묻히며 캄캄한 골목에 접어든다 © 김종란 2021.05.25

수묵화 3 / 김종란

수묵화 3 김종란 서늘한 이국(異國)의 말로 레슬링을 해 숲에서는 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근육과 핏줄이 엉기어 있지만 숲에서는 살아 있으리라 눈 폭풍 속을 달려 겨울 숲 눈을 가리고 달리고 있어 언제 누가 내가 네가 이국의 말로 레슬링을 하고 있어 있는 말 없는 말/ 눈보라 말하면서 도망가고 있어 겨울숲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어 먼 겨울숲은 눈보라에 잠겨 있어 © 김종란 2014.01.08

숲 / 김정기

숲 김정기 숲은 새벽의 기미로 달콤하다 술렁이며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어울려 여름을 만든다. 쓰르라미가 자지러지는 청춘의 손짓을 그때 그 순간을 잡지 못한 숲은 기우뚱거린다. 감춘 것 없이 다 들어낸 알몸으로 땡볕에 땀 흘리며 서있는 나무들에게서 만져지는 슬픔 절단해버린 발자국을 수 없이 되살리며 그들의 반짝임에 덩달아 뜨거움을 비벼 넣는다. 올해 팔월도 속절없이 심한 추위를 타는데 매일 시간은 새것 아닌가. 내 안에 충동은 오늘도 못 가본 곳을 살피지 않는가. 뒤 돌아보며 챙기지 못한 것 숨결 안에 가두고 오랜 비바람에 시달린 나무들의 얼굴은 상쾌하고 환하다 그들의 표정은 언제 보아도 편하다 더구나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웨스트체스터*의 여름 숲은. *뉴욕 북부 © 김정기 2010.08.08

|詩| 기생잠자리

웃을 때마다 뇌가 울린다 거대한 숲, 비에 젖은 접동새가 귀 기울이는 천둥 벼락, 지난 여름이 기울 때도 그랬다 새끼 손가락 반만 한 妓生잠자리 妓生잠자리 날개를 반짝이며 쏘다니는 원시의 숲에서 당신은 유튜브를 묵묵히 관람한다 공포에 질려서 마구 고함을 치고 싶어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어도 등허리에 여리디 여린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신 로마신화를 슬쩍 빠져나와 속세의 숲을 유람하는 바람의 신 神이라는 당신의 아이디, 이름을 발음하기가 한참 어려운 神이 숲을 회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귀신 신, 웃을 때마다 쑥쑥 올라가는 방문통계 등뼈를 전후 좌우로 흔들면서 영영 당신이 전신을 부르르 떨다시피 시작 노트: 브들레르, 케루악, 긴즈버그, 정진규 같은 산문시인들의 고초를 생각한다. 케루악의 "On the ..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