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량 359

|컬럼| 432. 섶나무와 쓸개

어릴 적 배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한다. ‘정신상담’과 첫소리만 빼면 발음이 똑같고 뼈에 사무친 내 직업의식 때문인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말이다. 대학입시 공부할 때 교감 선생이 멋모르는 우리들에게 와신상담해서 꼭 좋은 대학에 붙으라고 언성을 높여 당부하던 말. 쓸개의 쓴 맛이 입안에 느껴지는 말. 이빨을 득득 갈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노력해서 어떤 일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말. 그 이상한 말의 내막을 공부한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3,4세기 춘추전국시대다. 오(吳)나라 왕이 월(越)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하고 전사한다. 아들이 원통해 하며 삐쭉삐쭉한 섶나무를 매일 밤 깔고 자는 아픔으로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다짐한다. 아들은 얼마 후 전쟁에 이겨 월나라 왕을..

|詩| 여우비 내리는 날

여우비가 내렸다 짙은 안개가 경마장 함성처럼 질주하면서 내 차를 스치면서 험준한 계곡을 빠지면서 여우비가 쏟아지는 거 앞서거니 뒤서거니 파크웨이를 달리는 용모 어슷비슷한 승용차들이 제각각 무슨 굉장한 철학서적을 읽고 있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요 앞차가 깜박이를 키네 나도 깜박이를 켰지 분명한 이유가 없었어 여우와 호랑이는 그렇게 비 내리는 날 시집 장가를 갔다 청명한 날이면 날마다 그냥 누워 잠만 쿨쿨 자는 종족보존 본능이라니 여우비를 맞으며 나는 슬며시 사라지고 얼굴이 대충 당신을 닮은 내 종족이 살아 남으리라는 생각이 솟았다 불쑥 © 서 량 2007.03.03 세 번째 시집 (도서출판 황금알, 2007)에서

발표된 詩 202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