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가 내렸다
짙은 안개가 경마장 함성처럼 질주하면서
내 차를 스치면서 험준한 계곡을 빠지면서
여우비가 쏟아지는 거 앞서거니 뒤서거니 파크웨이를 달리는 용모 어슷비슷한 승용차들이 제각각 무슨 굉장한 철학서적을 읽고 있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요 앞차가 깜박이를 키네 나도 깜박이를 켰지 분명한 이유가 없었어
여우와 호랑이는 그렇게
비 내리는 날 시집 장가를 갔다
청명한 날이면 날마다 그냥 누워 잠만 쿨쿨 자는
종족보존 본능이라니
여우비를 맞으며 나는 슬며시 사라지고
얼굴이 대충 당신을 닮은 내 종족이 살아 남으리라는
생각이 솟았다 불쑥
© 서 량 2007.03.03
세 번째 시집 <푸른 절벽>(도서출판 황금알, 200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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