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 8

산벚꽃나무 숲 / 김정기

산벚꽃나무 숲 김정기 바람 소리는 푸른 산울림이 되고 추위에 멱살을 잡히던 숲은 그루터기까지 떨고 있었는데 깊이 흔들리며 지나온 날들의 햇살 그 눈부신 설렘을 안고 내 안에 한 그루 자라던 산벚꽃나무 어린 태를 벗으며 달라지기 시작하여 숲에 가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대만 보면 눈물짓던 버릇도 버리고 그 숲에 발을 딛고 좁혀온 간격 있는 언어 아직도 그 이름만으로도 눈이 떠지는 자리 가지는 가지대로 엮인 자태에 매혹되어서 사철 봄 냄새로 가득 채웠다 우리는 휘청거리지 않았지 혼자라도 향기로웠지 어두워도 빛이 보였지 닿기만 하면 불이 켜지던 청춘을 거머쥐고 먼 길을 왔다 남은 시간도 꽃잎에 이슬로 태어나려고 한 점의 얼룩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분홍이 되기 위해 여기까지 초록의 부축을 받으며 © ..

*흰 러닝셔츠 / 폭설 -- 김종란

흰 러닝셔츠 / 폭설 김종란 죽은 듯 침대에 누운 겨울 입김 후 불면 거울에 드러나는 겨울 침대 끝에 떨어져 있는 마른 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옮기는 마른 발걸음 이미 높이 자란 사유의 나무에 기대어 땀 닦아 내는 푸른 웃음 해 기울도록 마룻장 걸레질 하는 동안 다시 해 떠올라 온 종일 물 긷는 동안 자유로이 거울 안 바람 소리 시원하고 글 쓰는 소리 사각인 다 잠시 몸 비워 두고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거울 흰 러닝셔츠 바람 글 쓰는 어깨 위로 폭설이다 *잠시 겨울에 잠든 김기천 시인에게 © 김종란 2015.01.19

자줏빛 정원 / 김종란

자줏빛 정원 김종란 포도주 잔 밑 바닥에 남겨진 자줏빛 얼룩 정원이 어두워지는 무렵입니다 눈을 감으며 바라 보는 바람 소리입니다 소리 날아 오르는 깃털에 깃든 찰나를 잡았었지요 순간 찬란한 빛 흐려지며 매혹/ 어둠의 깃을 치고 날아 갔으니 바다 하늘 손 잡은 바다 흐려지는 부분 어느 곳 서성이지 않을까 밤이 찾아 드는 정원 Cassiopeia 자리를 지나 밤 하늘을 날아 다닙니다 그 찰나를 볼수 있을까 은폐된 검은 눈/ 그 분의 품에 들었을까 자줏빛 정원에서 귀 기울이는 시계 소리 바람 소리입니다 © 김종란 2014.09.02

겨울나기 / 김정기

겨울나기 김정기 바람 소리 몸속으로 스며들어 찬물에 손을 씻고 밀봉된 연서를 뜯어보는 영하의 밤 우리는 흘러간 것들 때문에 밀려오는 것을 밀어 내며 불을 지핀다 얼지 않은 바다를 건너 참나무 장작 불꽃이 되어 타 오르는 그는 시인은 영웅을 닮아 운명과 대결하며 끝없이 싸우다가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고 그럴 때 빛나고 아름답다고 이처럼 매혹적이고 장엄한 것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朔風도 영어로 불어오는 땅 아!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내가 사는 웨스트체스터를 달구고 있다 덩달아 나도 뜨거워져서 껴입은 옷을 벗어 휘영청 떠 있는 달 위에 걸며 겨울을 난다. © 김정기 2011.01.18

|詩| 헷갈리기라도 한 듯이 마치도

바람 소리 먼 천둥 소리 종달새 소리 베토벤 열정 소나타 3악장의 6도 화음 재즈 비트에 깔리는 당김음 병원 여직원들의 요란한 웃음 소리 뎅뎅 울리는 괘종시계 30 중반 내 엄마 목소리 이러이러한 소리들의 마법(魔法)을 내가 정말! 서글픈 유행가 가사 서정주 식의 어법(語法) 마크 트웨인의 막말 요한복음 1장 1절 햄릿의 존재론적 독백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는 말 양자택일 하라는 말 우렁차게 울리는 새벽 염불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당신이나 나나 참! 시작 노트: 나이 들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말의 의미, 말속에 숨어있는 사람 마음 같은 것에 예민해지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하는 요한의 말을 생각한다. 말이 곧 신이라는 말을 신봉한다. 과연 소리가 마음의 메신저일..

2022.03.30

여름 강을 건너는 시간 / 김정기

여름 강을 건너는 시간 김정기 오후 땡볕을 달래는 강물소리에 여름을 덧입고 뒤 돌아보니 세상은 뜨겁게 달아 올라도 지나온 발자국은 차겁기만하다 목이 마른 바람 소리가 닥쳐온 계절의 옷깃을 잡고 오래 찢기고 바스러진 것들이 무성하게 푸르러 강물과 동행한다 가쁜 숨으로 적막을 조우하는 시간을 잠그고 조금씩 여름날을 베어먹는다 어지러운 증세가 녹아 강바람으로 떨리는 피안을 향해 손사래치며 일어서는 강물 문고리를 잡고 허기지고 삭은 오늘을 추스려 한 걸음씩 이 땅에 없는 빛으로 다가 간다 © 김정기 2021.07.28

|컬럼| 376. Sounds Good?

The sound of the Earth turning (Provided by NASA): 지구가 회전하는 소리 (미항공우주국 제공) 가을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11월 중순에 하늘을 헤집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간들간들 땅으로 떨어지는 마른 잎새들을 본다. 낙엽을 재촉하듯 간간 돌풍이 일어난다. 창문을 여니 바람 소리가 시원하다.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1894)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의 첫 연이 생각난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아니에요/ 그러나 잎새들이 매달리며 떨고 있는 동안/ 바람이 지나가는 거지요.” 로제티는 바람의 존재 여부를 시각적으로 처리한다.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바람이 소리를 내면서 창밖을 스쳐간다. 창문의 커튼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