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und of the Earth turning (Provided by NASA): 지구가 회전하는 소리 (미항공우주국 제공)
가을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11월 중순에 하늘을 헤집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간들간들 땅으로 떨어지는 마른 잎새들을 본다. 낙엽을 재촉하듯 간간 돌풍이 일어난다. 창문을 여니 바람 소리가 시원하다.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1894)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의 첫 연이 생각난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아니에요/ 그러나 잎새들이 매달리며 떨고 있는 동안/ 바람이 지나가는 거지요.”
로제티는 바람의 존재 여부를 시각적으로 처리한다.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바람이 소리를 내면서 창밖을 스쳐간다. 창문의 커튼을 내리고 벽을 마주해도 바람 소리는 여전하다. 음악처럼 들린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의 소리를 인터넷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특별한 녹음장치를 통해 듣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합쳐진 음향은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천체 자체가 내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재즈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1899~1974)은 “If it sounds good, it is good.”이라는 명언을 남긴 재즈 음악의 거장이다. – “듣기에 좋으면, 좋은 것이다.” -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시각우선주의’에 대항할 만한 컨셉이다. 듣기에 좋은 목소리, 말투, 그리고 그런 글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는 ‘청각우선주의’는 어떤가. 둘 다라면?
보기에 좋은 떡이나 듣기에 좋은 목소리가 다 ‘감각’에 의존한다는 점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 성경에 나오는 말 대로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 본능과 오감(五感)에서 그치는 삶은 따분한 삶이다.
시각은 중뇌(中腦, midbrain), 흔히 말하는 ‘동물뇌’에 뿌리를 둔다. 언어와 텍스트에 의존하는 사고방식은 전뇌(前腦, forebrain), 소위 ‘인간뇌’를 기반으로 삼는다. 생존의 근간을 이루는 강인한 동물뇌가 나약한 인간뇌를 손쉽게 장악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인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아침 저녁으로 티브이 드라마에 심취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말이지.
2,3십년 전 까지만 해도 웬만한 대화는 ‘오케이’로 쾌적하게 끝나기가 십상이었지. 요사이는 다르다. ‘Thank you’ 하면 ‘You’re welcome’ 하는 고전적 응답 대신에 ‘No problem!’ 하는 퉁명스러운 반응이 유행이다. 우리는 더 이상 ‘Okay?’ 하지 않고 ‘Sounds good?’ 하며 청각에 호소하는 화법을 익히는 중이다.
내 말을 넘겨듣지 말기 바란다. ‘If it sounds good, it is good’에 입각한 대화가 유행한다고 청각우선주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아직도 누구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당신은, “You look good today!” 하며 호들갑을 떨어도 무방할 것이다. 자궁 속 태아는 우선 시각적으로 빛을 감지하고 2주가 지난 후에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바람 소리 같은.
요사이 나도 “Is it okay with you?”보다 문법적으로 이상한 “Sounds good?”을 자주 쓴다. 왠지 모르게 상대가 이렇게 격식에서 벗어나는 말을 듣고 “No, it doesn’t sound good!” 하며 정중하게 응답하거나 아니면 툭, “No good!” 하며 소리치기가 힘들 것이라는 속셈인지도 모르지. 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Sounds good?
© 서 량 2020.11.15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1월 18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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