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19

|詩| 색소폰 솔로

미리 준비한 것이 아무 쓸모 없어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저 음부에서 눈을 감는 수법으로 한동안 멈추는 숨길 나와라 썩 나와라 발바닥부터 눈썹 위까지 하나뿐인 영혼을 뭉개버리는 뻔뻔함으로 땀방울도 질펀하게 울어라 얼마든지 울어라 녹아내리는 금덩어리 손가락의 흉계 찢어진 나뭇가지 가파른 낭떠러지 흙 꽃잎 소금 지렁이 샛노란 하늘 시커먼 돌멩이 씩씩한 군인이 구름 속에 넘어졌다가 한참 후에 툭툭 털고 일어난다 흐느끼는 것도 바람일 뿐이다 강물이 덩달아 울지 않는다 최고 음역에서 눈을 감는 수법으로 흙바람이 되돌아오는 기압골 소용돌이가 높은음자리표에 천천히 멎는다 무수한 소립자 십자 광선들이 금빛 색소폰 몸체 밖으로 이탈한다 시작 노트: 옛날에 쓴 시는 대개 몇 군데 고치고 싶기 마련인데. 25년 전에 ..

발표된 詩 2021.06.20

|詩| 맨해튼 봄바람

봄바람 부는 날 쪽배에 탄 채 강물에 떠내려 갔지요 물결도 내 몸도 내내 가벼웠어요 둥둥 떠내려 갔지요 맨해튼은 가벼운 섬입니다 맨해튼은 생김새가 꼭 고구마 생김새예요 맨해튼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얼굴이 고구마 모양이잖아요 자세히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바람이 목 언저리를 자꾸 파고드는 날 당신과 내가 수소, 산소, 질소, 탄소가 되어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맨해튼을 사랑하기 때문인가요 봄바람이 연거푸 불어오는 날이면 © 서 량 2008.04.14 - 2021.03.29

2021.03.29

|詩| 맨해튼 북부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너절한 거리를 걸어간다고 쳐 꽃집도 몇 군데 있는 개는 개대로 바보처럼 기뻐하고 개 주인은 인생을 정중하게 탐색하는 태도를 포기한지 한참 됐다거나 아니면 찌릿한 마음의 평온 같은 거나 죽음에 접근하는 서늘한 평화를 좋아하는 법을 목하 체득 중이라고 쳐 개 주인이 아니야 꼭 그런 상황이 아니면 어때요 설정이야 아무렴 어때요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응 그래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한여름에도 늦가을인 듯 바람이 부는 거리를 개 다리 넷과 사람 다리 둘 도합 다리 여섯 개가 바쁘게 튼튼한 드럼 비트에 박자 맞춰서 쿵처적! 쿵척! 신나게 빠르게 걸어간다고 쳐 수정벽으로 쫘악 둘러 싸인 용궁 속에 앉아 적적한 바다 밑을..

2020.07.05

바람의 기타(Guitar) / 김종란

바람의 기타(Guitar) 김종란 케이블카 위에 구름이 흐른다 케이블카 지붕 위에 기타를 안고 있다 바람은 기타를 울려 본다 내 서툰 연주 덮으려 연주를 한다 바람이 밀어다 올려 놓은 케이불카 지붕위에 위태위태 흔들리며 선다 기타를 껴 앉는다 오후 4시와 5시 사이 허드슨 강이 무겁게 흐르고 엿가락 같이 끈적하고 기인 길도 터벅터벅 들어 온다 비 개인 숲속에서 자라나 뛰어든 폭포 이미 끝자락 푸르고 희게 웃으며 떨어진다 붐 비는 도시 어두운 길에 화투짝처럼 떨어져 있다가 바람에 휘몰려 지붕위에 날아 오른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맨해튼 어느 지붕 위에서 서툴게 기타를 친다 젖은 신발 벗지 못한 채 지니고 온 때 묻은 배낭에 기대어 보다 못한 바람이 나의 기타를 울린다 여러 길을 걸어와 잠시 머물다 일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