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13

|詩| 가을의 난동

심지어 캄캄한 우주 깨알만한 은하수까지 움켜쥐는 엄청난 기력입니다 떡갈나무들이 허리 굽혀 옷을 벗는다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추억, 추억 전신이 땅거미 저녁 빛, 오렌지색 황혼 빛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몸부림, 몸부림이 목숨을 거는 모습이다 슬픈 기색이 없이 눈물 따위 글썽이지 않으면서 심지어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깁니다 시작 노트: 옛날에 써 두었던 시를 혼쭐나게 많이 뜯어고쳤다. 시를 쓰다 보면 그저 만만한 게 계절을 주제로 삼는 짓이다. 특히 봄이나 가을을 우려먹는다. 전에 이라는 시를 쓴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다. 맞다, 맞다. 계절은 내게 반란을 이르키고 난동을 부린다. 그런 어려움을 섭렵하겠다고 덤벼드는 나도 참, 나다. © 서 량 2008.10.14 – 2022.11.17

2022.11.17

|詩| *하고재비

그늘에서 울려오는 소리 뒷마당 떡갈나무 잎새 검푸른 그림자 떨림 마구잡이로 심계항진을 일으키는 떡갈나무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말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릇푸릇하기만 하더니 이제 빨리 흥분하는 우거진 녹음의 자유분방 그늘진 잎새가 푸르름의 합창을 묵음처리 합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며 초록을 부추기는 소리 마침내 확연히 들려요 떡갈나무 몸체가 사납게 내지르는 탄성, 수목의 본성! * 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경상도 말 © 서 량 2021.05.16

2021.05.17

|詩| 편안한 마음

키가 큰 떡갈나무가 내 그림자를 보듬어 주는 한나절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바람 부는 봄날 어느 날 떡갈나무 몸체를 애써 붙잡아주는 내 거동이 이상하다 느슨해진다 키가 큰 떡갈나무가 번쩍이는 해와 달 반대쪽 그 자리에 마냥 우두커니 서서 그냥 그대로 지복(至福)을 누릴 것이야 봄이며 겨울이며 별로 가리지 않고 정신병동 폐쇄병동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은 후 내가 창밖을 내다볼 때 같은 때 © 서 량 2017.05.05 - 2021.01.19

2021.01.19

|詩| 치고 들어오다

치고 들어오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 -- 비트겐슈타인 1월을 맞이하라 시간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헐벗은 떡갈나무 가지 쪽으로 당신이 눈길을 옮기는 사이에 지금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요 걸핏하면 발끈하기 갈등관계 지탱하기 일부러 밀어붙이기 서로를 감염시키기 1월을 공격하라 맞받아 치는 사이에 아픔은 사라진다 당신의 슬픔이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시간이 떡갈나무를 냅다 흔드는 동안 © 서 량 2021.01.15

2021.01.15

|詩| 겨울 냄새

아까부터 겨울이 부스럭거려요 벌거숭이 팔을 흔들며 창밖에서 떡갈나무들이 부르는 합창을 듣고 있어요 그러다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중간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가 따따따 울립니다 지금 진눈깨비가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잖아요 신바람나는 개다리춤, 내가 좋아하는 개다리춤, 그러다가 살려주세요, 하는 애원으로 이어집니다 아까부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은빛, 신선한 은빛 기류(氣流)를 맞이하고 있어요 나 지금 © 서 량 2021.01.02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071542 [글마당] 겨울 냄새 아까부터 겨울이 부스럭거려요벌거숭이 팔을 흔들며 창밖에서떡갈나무들이 부르는 합창을 듣고 있어요그러다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중간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가따따따 울립니다지금..

발표된 詩 2021.01.02

|詩| 떡갈나무의 오후 4시

누가 하루의 극치가 정오에 있다고 했나요, 누가 오후 네 시쯤 개구리 헤엄치 듯 춤추는 햇살의 체취를 얼핏 비켜가야 한다 했나요 봄바람은 이제 매끈한 꼬리를 감추고 없고, 초여름 뭉게구름이 함박꽃 웃음으로 지상의 당신을 내려다 볼 때쯤 누가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을 품에서 밀어내고 싶다 했나요 반짝이는 떡갈나무 잎새들 건너 쪽 저토록 명암이 뚜렷한 쪽빛 하늘 속으로 절대로 철버덕 몸을 던지지 않겠다고 누가 말했나요 © 서 량 2009.05.29

발표된 詩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