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9

수박 / 김정기

수박 김정기 평온의 숲에 칼끝을 대니 붉은 도시에 흐르는 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내 책꽂이에 꽂힌 난해한 시같이 길을 못 찾아 내가 내는 도시계획대로 사각형을 만들고 그날 친정집에서 먹던 달콤함이 이 마을에 넘친다. 당신의 임지에서 듣던 나팔소리에 섞여 총성이 수박 안에 가득해 터져 나올 때 사방에서 갈증이 물소리를 낸다. 수박은 이미 지난 시간을 향해 구르고 굴러 닿을 수 없는 도시의 길목을 지키고 수박 씨 같은 글씨로 소설을 쓰던 큰오빠가 무겁던 젊음을 지고 걸어오고 있다. 내가 수박을 자르고 있는 이 밤에 세월은 물구나무를 서서 엉키고 있다. © 김정기 2012.06.28

6월 도시 / 김정기

6월 도시 김정기 지난 봄 꽃들의 주검 위에 비를 뿌리고 내 품에 스며든 젖은 꽃잎 친구의 숨결 속에 가서 안기는데 영산홍 송이마다 햇볕 한 장 눈부시다. 뜨거운 뇌우도 번쩍일 푸른 숲에 아직도 남아있는 혈기를 다스리며 앰뷸런스는 도시의 정수리를 관통하고 허리 꺾긴 달력 안에 숨는구나. 남은 날들의 은빛 어깨에 기대어 빈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듣는다. 윤기 도는 솔잎들이 숨 가쁜 정오 도시를 밝히고 정돈된 거리에서 후둑이는 빗방울 맞으면 유월은 물결이 된다. 세월이 된다. © 김정기 2011.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