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눈 / 김종란 커다란 눈 김종란 빛 소나기 맞으면 도시와 나, 검은 뼈가 드러난다 즈려뜨는 고양이 커다란 눈 세상에, 마음만 컸었구나! 그저 부끄러워 고양이 눈에 잠긴 야생의 숲 한아름드리 나무를 본다 숲이 빠져드는 정적, 놀람 © 김종란 2017.08.1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4
수박 / 김정기 수박 김정기 평온의 숲에 칼끝을 대니 붉은 도시에 흐르는 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내 책꽂이에 꽂힌 난해한 시같이 길을 못 찾아 내가 내는 도시계획대로 사각형을 만들고 그날 친정집에서 먹던 달콤함이 이 마을에 넘친다. 당신의 임지에서 듣던 나팔소리에 섞여 총성이 수박 안에 가득해 터져 나올 때 사방에서 갈증이 물소리를 낸다. 수박은 이미 지난 시간을 향해 구르고 굴러 닿을 수 없는 도시의 길목을 지키고 수박 씨 같은 글씨로 소설을 쓰던 큰오빠가 무겁던 젊음을 지고 걸어오고 있다. 내가 수박을 자르고 있는 이 밤에 세월은 물구나무를 서서 엉키고 있다. © 김정기 2012.06.28 김정기의 詩모음 2023.01.06
6월 도시 / 김정기 6월 도시 김정기 지난 봄 꽃들의 주검 위에 비를 뿌리고 내 품에 스며든 젖은 꽃잎 친구의 숨결 속에 가서 안기는데 영산홍 송이마다 햇볕 한 장 눈부시다. 뜨거운 뇌우도 번쩍일 푸른 숲에 아직도 남아있는 혈기를 다스리며 앰뷸런스는 도시의 정수리를 관통하고 허리 꺾긴 달력 안에 숨는구나. 남은 날들의 은빛 어깨에 기대어 빈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듣는다. 윤기 도는 솔잎들이 숨 가쁜 정오 도시를 밝히고 정돈된 거리에서 후둑이는 빗방울 맞으면 유월은 물결이 된다. 세월이 된다. © 김정기 2011.06.09 김정기의 詩모음 2022.12.31
|詩| 노래방 주인의 죽음 도시에 땅거미가 질 때쯤 산허리는 이슬에 젖는다 타악기 소리 들려요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네요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에 무릎을 위쪽으로 올린다 샤워를 마치고 몸의 물기를 닦는 중이었어요 51세의 노래방 주인이 노래방 밖에서 흉기에 찔려 죽었대 묵중한 쇳덩이가 여럿 붙어있는 .. 詩 2013.09.16
|詩| 뉴욕 마음 상태 인간이 도시를 앞장서지 못한다 젊은 놈이 웃으며 이리 오시죠! 하는 제스처를 쓰는 미드 맨해튼 레스토랑 앞 길바닥에 언뜻 쥐색인가 싶었더니 푸른 빛이 감도는 비둘기 서너 마리가 나란히들 걸어간다 나는 도시가 빠르게 쇠락하는 겨울이며 급할 때면 오히려 차분해지는 당신에게 마.. 詩 2013.01.01
피노키오 / 임의숙 피노키오 임의숙 남자의 대패질이 멈추었다 털어내는 톱밥의 먼지들이 어스름 속으로 회전하자 도심지는 희뿌연 한 수증기를 쏘아 올린다 한 마리 거대한 고래 같았다 아니다 고래를 통째로 삼킨 도시였다 횃불을 밝혀든 간판들 사이사이 밀리고 밀리는 삶의 환부들,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어도 부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02.05
도시 비둘기 / 최양숙 도시 비둘기 최양숙 인간의 죄를 40일간의 물로 심판 받을 때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보냈던 비둘기는 올리브 잎사귀를 물어왔지 용서 받은 인간에게 생명의 소식을 물고 온 귀소본능의 비둘기 이제는 평화와 희망의 옷을 벗고 자생 능력만 남은 도시의 노숙자 그들의 방주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먹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12.18
|詩| 도시의 겨울 도시는 불면의 밤에 도사리고 앉아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에 빨간 핏발이 선다 도시는 초저녁에 이미 까무러쳤어 너무 조용해요 소음이 다 사라지고 난 도시는 너무 미치광스러워 도시는 달빛도 밤바람도 사랑도 명상도 모조리 거절한다 도시가 행글라이더처럼 뛰어가다가 절벽을 벗어.. 詩 2009.02.03
|컬럼| 48. 도시의 질서 당신은 경찰(警察)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는가. 참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한자. '깨우칠 경', '살필 찰'. 그러니까 경찰은 깨우치면서 살피는 사람이다. 경찰을 영어로 'police'라 한다. 이 말은 15세기 경 희랍어로 '도시'라는 뜻이었다가 19세기에 현대적 의미의 '경찰'로 바뀌었다. 폴리스는 아직도 미..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0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