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8. 도시의 질서

서 량 2008. 6. 3. 20:42

 당신은 경찰(警察)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는가. 참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한자. '깨우칠 경', '살필 찰'. 그러니까 경찰은 깨우치면서 살피는 사람이다.

 

 경찰을 영어로 'police'라 한다. 이 말은 15세기 경 희랍어로 '도시'라는 뜻이었다가 19세기에 현대적 의미의 '경찰'로 바뀌었다. 폴리스는 아직도 미국의 도시 이름들 중에 인디아나주의 수도 'Indianapolis'나 미네소타주의 수도 'Minneapolis' 같은 도시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태리의 경치 좋은 도시 나폴리도 폴리스와 어원을 같이한다. 경찰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평화로운 농촌에 무슨 경찰이 필요하겠는가.

 

 도시(都市)의 '도읍 도'에는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옥편에 나와 있다. '시'는 '저자 시'. 요샛말로 마켓이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는 '아름답고 우아한 시장'이랄 수 있다. 어떤가. 서울, 그것도 압구정동이나 강남에서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 기분이 절로 우쭐해지지 않는가.

 

 서구의 도시는 경찰이 판을 치고 우리의 도시는 상인들이 날뛰는 정경이 떠오른다. 왜 양키들은 경찰 위주의 도시를 건립했고 우리는 장사꾼들의 도시를 세웠을까. 양키들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동물근성이 앞을 가렸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경찰의 통제가 필요했고, 반면에 우리는 도시가 풍요해질 수록 장삿속만 늘었다는 얘기가 되는 듯 싶다. 양키도 우리도 낯이 좀 뜨거워지는 사연이다. 그러나 도시의 질서는 경찰이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질서(秩序)라는 말은 또 어떤가. '차례 질', '차례 서'. 차례차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즉 질서다. 그것은 수퍼마켓 같은 데서 긴 줄에 서서 자기 순번을 지키는 우리의 참을성을 의미한다. 질서는 새치기를 용납 하지 않는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이여. 부디 그대들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질서를 깨는 놈들은 어떤 놈들인가. 밑도 끝도 없이 숭례문에 불을 지르는 미친 놈은 어떤 놈인가. 왜 아닌 밤중에 그런 미친 짓을 하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질서를 참지 못하는 광기(狂氣)의 발동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는 신을 시기하는 악마 역을 하는 사람, 이를테면 춘향전의 변사또 짓을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춘향이 야들야들한 볼기짝을 “매우 쳐라!” 하는 변사또를 당신도 기억하겠지. 그 변사또 때문에 춘향이의 정절은 더 빛이 나는 셈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쓴맛이 다한 끝에 오는 단맛이 기가 막히도록 희한하지 않겠는가.

 

 질서에 해당하는 영어의 'order'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 봤다. 'order'는 13세기에 종교적인 수련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을 뜻했다. 라틴어의 'ordo'는 베틀의 실을 의미했다. 직조기의 실이 가지런해야 직물이 잘 짜여지는 법이다. 'order'가 사회적인 질서라는 의미로 변한 것은 14세기 초엽이었다.  그 후 15세기가 되서야 'ordinary(정상적인)'이라는 단어도 탄생했다. 질서가 있는 삶이 정상적인 삶이다.

 

 법(法)은 문자 그대로 물이 흘러간다는 의미. 물의 흐름이 곧 법이니라. 영어의 'law'는 고대영어의 'lay'와 뿌리를 같이하는 말로서 '놓아두다'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법이라는 말이 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내 버려 두는 태도는 서구적 개인주의의 존엄성을 연상케 한다.

 

 동양의 법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서양의 법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그냥 놓여있다. 중세에 건립해 놓은 성처럼 수 천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우뚝 서 있다. 동양의 법이 유연하고 변화무쌍한 물처럼 여성적이라면 서양의 법은 돌처럼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남성적인 것이리라.


© 서 량 2008.02.18
--뉴욕중앙일보 2008년 2월 20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