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해변의 꽃 세찬 바람으로 해변을 머뭇거리는 꽃줄기 정수리 한복판에 소금기가 자욱합니다 밀물이 엄청나게 덤벼드는 갯벌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꽃은 진한 갈색 진흙이건 조개 껍질이 세밀하게 부서진 백사장이거나 깊은 바다 속 유황이 부글거리는 잉크 빛 물 속이건 개의치 않고 염치 없이 피어.. 詩 2009.06.23
|詩| 꽃과 바람과 달과** 꽃은 오로지 바람을 위해 저도 모르게 태어났대나 봐 장마비가 개울물을 몰아내듯 꽃은 늘 그렇게 세차게 밀어붙인대 그리움 따위란 꿈에도 모르는 새싹들이 까딱까딱 머리를 치켜들던 아침이 다녀가고 징그러운 한나절이 내 앞에 우뚝 서 있네 징그러워 견딜 수 없으면서도 솔직히 크.. 詩 2009.06.12
|詩| 별 몇 개 하루에 하나씩 별 한 마리씩 소리 없이 사라진다지 하루에 하나씩 앙앙 울어대며 병아리 깃털같이 가벼운 별 살금살금 한 마리씩 또 태어난다지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디서 뭘 하고 있다지요 가녀린 꽃처럼 나란히 죽어 누워있나요, 색색 자고 있나요 하루가 하나씩 차근차근 없어질수록 이거 뭐야? .. 詩 2009.06.11
|詩| 꽃과의 대화 꽃이 밑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꽃이 더러운 흙으로 귀순하는 숙명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정녕 아닐까 꽃에게 내가 묻는다 "꽃아, 너는 왜 그렇게 전신을 다 드러내고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흉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느냐?" 꽃이 대답한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이지만 전혀 흡족한 반응이 아니지만 애틋한 꽃의 말을 나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런 어려운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아예 나는 꽃으로 태어나지를 않았을 거예요!" © 서 량 2009.05.08 --- 2020.05.30 詩 2009.05.08
|詩| 꽃이 피는 동안 각양각색 자동차들이 봄나들이 행렬을 이뤘어요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조심스레 매달린 귀신같이 새하얀 봄꽃도 봄꽃이지만 검푸른 기와지붕도 봄볕에 반짝이는 질항아리들도 무지하게 아름다운 집단으로 공존하는 풍경이에요 이처럼 흥겨운 인터넷 화면의 봄나들이를 도무지 어쩌지요 쌀쌀한 봄바람에 술렁이는 대지의 습성일랑 또 어쩌지요 햇살이 눈부신 날일 수록 정체불명의 신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대요 조금씩 홀로 떠밀리는 혼자만의 운명일랑 절대 용납하지 않는 무서운 성미지만 나중에라도 알고 보면 참 너그러운 신이라나요 달래 냉이 꽃다지가 당신의 연약한 미각을 자꾸 톡톡 건드리는 힘에 못 이겨 당신이 느리게 몸을 푸는 동안 그 정체불명의 신이 좀 강짜를 부린대요 © 서 량 2009.04,08 詩 2009.04.09
|詩| 꽃 사랑하는 마음에 무리가 간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당신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억겁을 굽이쳐 온 짙은 안개 속에서 달빛에 젖은 채 의연히 고개를 드는 당신의 내력을 함부로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을 향해서 피어나는 마음 속 꽃 한 송이가 지금 내 앞에 호젓이 서 있는 당신이랄 수 없다 .. 발표된 詩 2008.11.03
|詩| 꽃의 얼굴* 꽃 한송이가 사람 얼굴처럼 보일 수 있어 아냐 꽃 얼굴이 즉 사람 얼굴이야 꽃이 뭐길래 어떤 때는 밤새도록 꽃 생각만 나지 꽃은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저 혼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독살스러운 표정으로 앙심을 품기도 한대 꽃의 속성을 파헤쳐 봐야 아무런 소용이 .. 詩 2008.05.19
|詩| 꽃이 터지는 소리 봄이면 우리 동네 어느 집 담장 밑에서 뻥튀기 하던 아저씨 생각이 난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꼬들꼬들한 쌀알들을 부들부들하게 만들던 요술쟁이 아저씨 뻥! 하는 순간 아이들은 혼비백산이 된다 나는 그 폭음이 좋아서 그 아저씨 옆에서 오래 서 있었다 종일토록 엉거주춤 그 옛날 .. 詩 2008.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