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토끼 이야기 / 김종란 흰 토끼 이야기 김종란 흰 토끼를 만났지 토끼를 품에 안고 들판을 걸었어 끝없는 여름 건너편으로 토끼를 놓아준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한 마리 토끼, 세상이 온통 흰 구름으로 덮여 있네 토끼가 아닌 것이 없어 세상에 시계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 나무의 키가 자라는 속도를 기록한다 눈금을 새겨 놓으려 해 세심하게 흰 토끼 순간, 시간을 뛰어넘어 들판 밖으로 사라졌어 © 김종란 2021.07.0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2.03
|詩| 아, 헬리콥터 떴다 잿빛 담요로 덮인 먼 곳 구름 쪽으로 날아가는 강철 저 덜컹거리는, 귀에 익숙한 소리 도무지 없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척 오래 기다리던 꿈, 옛 사랑 나는 원시의 아프리카 불타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잠자리다 두 팔을 양껏 벌리면 한쪽 날개가 최소 스쿨 버스 한 대 길이로 창공을 누비는 날짐승이지 정말? 응, 딱 그 정도 크기! 몸 전체 어디에도 철제의 프로펠러는 보이지 않는 생명체야 공룡시대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에 앉아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당신을 찾아가는 © 서 량 2021.09.01 詩 2021.09.01
|컬럼| 280. 가짜 뉴스 2017년 2월 17일에 CNN 티비에서 한 평론가가 'fake news (가짜 뉴스)'라는 단어를 쓰자 진행자가 벌컥 화를 내면서 방영을 중단한 내용이 인터넷에 뜬 것을 유심히 보았다. 이 뉴스는, 그날보다 엿새 전 2월 11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일정을 끝냈다고 발표한 다음 예정에도 없었던 플로리다 ..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7.02.22
|컬럼| 257. 끈덕진 사랑이라니! 'transience'는 우리말로 '덧없음'이라 해야 근사한 번역이 될 것이다. 문자를 쓰고 싶으면 무상(無常)이라는 한자어를 써도 좋다. 'transience'의 첫 부분 'trans'는 'transportation(교통)'이나 'translation (번역)' 할 때의 'trans'와 같은 뜻으로서 관통하거나 건너간다는 동적(動的)인 의미를 갖는다. 불교..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6.04.05
아카시아 / 임의숙 아카시아 임의숙 톡 쏘는 향에 딱따구리는 먼 기억 속 퉁퉁 부어 오른 추억을 파내고 말았다 이름 없는 얼굴 하나 불러 들였다 이 핑계 삼아 두 개의 잔을 받쳐 들고 네 개의 눈을 가린 채 너의 꽃잎을 따 먹는다 어느 산 새의 부리가 부르르 떨다간 산사의 샘물로 혓바닥의 가시를 뽑고 숭..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5.18
다락의 계절 / 최양숙 다락의 계절 최양숙 인생의 다락에 올라 지나간 시간에 떨군 낙엽을 헤쳐본다 켜켜이 쌓여있는 계절 속에 더 이상 뜨겁지 않은 열정이 흐트러져 있다 소중히 감싸 안았던 자랑도 번져가는 물결처럼 얼룩지고 안타까이 쥐어지지 않던 것도 공중에 흩어진 티끌이 되어버렸다 다락은 소리 없이 노래 부..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09.29
|詩| 희한한 기억 추억은 미련이나 다름없어요 그건 화려하거나 아주 어처구니 없이 음침한 혹은 좀 메스꺼운 우리의 실상입니다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기억이 기록하는 글쎄요 당신 영혼의 정체현상은 정말 시시한 실황중계입니다 그건 역사학자들이 임의로 조작하는 허위에요 실존은 기억이라기보다 아찔한 창조.. 詩 201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