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7일에 CNN 티비에서 한 평론가가 'fake news (가짜 뉴스)'라는 단어를 쓰자 진행자가 벌컥 화를 내면서 방영을 중단한 내용이 인터넷에 뜬 것을 유심히 보았다.
이 뉴스는, 그날보다 엿새 전 2월 11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일정을 끝냈다고 발표한 다음 예정에도 없었던 플로리다 팜 비치의 호화판 모금파티에 참석한 일을 소재로 삼았다. 뉴스 진행자는 많은 대통령 수행원들의 값비싼 호텔 체류비용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됐다는 점에 대하여 노골적인 불만을 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찌감치 CNN 티비가 '가짜 뉴스'를 방영한다는 험담을 들었다는 숨겨진 이유 때문에 마침내 울화통을 터뜨린 것으로 보였다. 인간적으로, 언론인이 진실을 추구하지 않고 거짓말 소식을 전한다는 지적은 정말 참기 힘든 모욕이라니까.
2016년 한 해 동안 옥스포드 인터넷 영어사전을 통하여 전 세계적으로 최고로 많은 조회 수를 올린 영어단어가 무엇인지 당신은 아는가 몰라.
바로 ‘post-truth’라는 하이픈으로 연결된 합성어다. 직역으로는 '후진실(後眞實)'이라 할 수 있지만 더 쉽게 ‘탈(脫) 진실’이라 의역을 하면 귀에 쏙 들어오는 번역. 어쨌든 진실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탈진실은 가짜 뉴스와 일맥상통한다.
탈진실이라는 말에는 진실이 무언지 이 세상 그 누구도 함부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솔직함이 숨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진실을 내세운다. 진실이란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어 보고 난 후 제각각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를테면, 당신과 내가 법정에 출두해서 어떤 사건의 진위를 가려낸다고 치자. 검사와 변호사들은 소위 요즘 한국의 언론이 애지중지 매달리는 '팩트(fact)'만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들먹일 것이고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은 일언지하에 묵살될 것이다.
단순한 진실은 잡다한 사실 속에 묻혀버린다. 어느덧 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잘 선택되고 채색된 사실만이 진실을 대신하는 경지에 들어선다. 그만큼 뉴스에는 허위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마크 트웨인 (Mark Twain: 1835 ~ 1910)이 남긴 명언을 생각한다. "There are three kinds of lies: lies, damned lies, and statistics. (세상에는 세 가지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우라질 놈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If you tell the truth, you don't have to remember anything. (만약 당신이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하도록 무서운 말이다.
매체(media)에는 신문을 위주로 하는 '언론매체(press media)'가 있고 근래에 들어서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가 매일 즐겨 찾는 '다중매체(multimedia)'가 있다. 어려운 한자말을 피하면서 한국인들은 후자를 그냥 '멀티미디어'라 일컫는다.
'press'는 13세기에 고대불어로 '군중'이라는 뜻이었단다. 고대영어로는 '다림질'이라는 뜻이었고, 20세기 초에 신문 혹은 언론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미디어는 대중들의 느낌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작금의 미디어는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
미디어는 죽었다! 우리는 더 이상 법정에 출두해서 이리저리 다림질 당하는 진실공방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 탈진실 시대를 사는 당신과 나는 어떤 법적 증거도 군중의 입맛에 알맞게 요리됐고, 민중이 힐끗 훑어보는 그림이 그들 심중에 제대로 맞게 채색되었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서 량 2017.02.20
-- 뉴욕중앙일보 2017년 2월 2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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