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15

|詩| 동맥피

동맥피 -- 마티스 그림 “모피 코트”의 여자에게 (1936) 여자 몸을 덮고 있잖아 주홍색 구름이 지열을 끌어들이는 구름이 숨이 콱콱 막히게 두툼하다 무더운 무릎이 의자를 휘감아 오르는 여린 소망이 왼손 위에 얹혀있는 오른손이 두툼하다 숨소리 들리잖아 칙칙한 숨소리 詩作 노트: 여자가 모피를 몸에 걸치면 동맥피가 떠오른다 그래서 마티스는 여자 치마를 새빨갛게 그린다 ©서 량 2024.01.15

|詩| 구름의 속도

커다란 구름 덩어리가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기류를 헤치고 질주하는 것을 보았다 우주탐색 로켓처럼 당신과 내 사이를 슝슝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는 거야 구름의 가장 무서운 습성은 과속이 잦다는 것 구름은 교통 단속을 받지 않습니다 구름은 절대로 하늘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그래서 무진장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실성을 해도 누가 뭐라 탓하지 않아요 핏빛 석양을 깨물어 먹는 날짐승 공룡들이 원시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절단한다 공룡의 과속은 지구와의 결별을 위한 수단이다 구름이 시야에서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구름의 행적을 찾아내서 내 알뜰살뜰한 원근법 안쪽으로 끌어드릴까 하는데 총알보다 빠른 구름의 몸놀림을 맨눈으로 쫓아갈 수 있다 하는데요 커다란 구름 덩어리가 당신과 내 속을 발칵 뒤집어 놓는..

2023.01.28

|詩| 발랄한 구름

구름이 내 서재 창문을 두드린다 구름 당신 神의 DNA 다 한통속 DNA 구름이 지 멋대로 행동해요 gloomy 구름 밤새 함박눈 내린 다음날 맑은 대낮에 증세가 더 심해진대 조짐이 좋아 아주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위덩더둥셩, 하는 구름은 독립개체 당신도 神도 말짱 독립개체 구름 배후에는 어느 놈이 있느냐 말해 다오 말해 다오, 음흠 *고려가요 작자미상 사모곡(思母曲)의 한 구절 시작 노트: 눈 온 다음날은 마음이 느슨해진다. 눈 온 다음날은 생각이 좀 과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구름과 神의 DNA를 상상하는 경우도 눈 온 다음날이다. 그러다가 고려가요도 떠오르고 말해 다오~ 하는 1979년 히트곡 김트리오의 '연안부두'가 떠오른다. 위덩더둥셩, 말해 다오, 음흠~♪ ♫ © 서 량 2022.01.08

2022.01.16

|詩| 여권만기일

살 떨리는 각성이었다 한여름 케네디 공항에서 자정쯤 내 여행의 자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때 불면의 밤을 절단하는 탐조등뿐만 아니라 허기진 밤참이 누워있는 식탁에서 생선구이 같은 고소한 비린내가 뭉실뭉실 났습니다 같은 시각에 짙은 안개가 서재 밖 키 큰 나무들 옆을 서성이고 있었지요 칙칙한 지느러미를 휘적거리며 그들이 떼를 지어 내 허랑한 상상력의 변두리를 슬금슬금 헤엄치는 밤이었습니다 이틀쯤 지난 대낮 태평양 뜨거운 하늘에서 발 밑으로 둥둥 떠도는 수제비 구름 덩어리들을 젖은 눈길로 검색했다 그러는 나를 누군가 비정하게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 서 량 2012.09.14

201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