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동굴 입구

서 량 2022. 5. 18. 20:02

 

퀴퀴한 동굴 속 낯익은 얼굴들 동물가죽으로 알몸을 덮는 둥 마는 둥 목이며 발목을 쇠사슬에 묶여 어깨만 흔들거리는 몸 그들 등때기 뒤쪽 어머나, 샹들리에 모양 횃불이 타오르는 *동굴 벽 그림자, 사나운 숨소리 굉음으로 울리는 동영상이 엄청 재미있어요 누군지 무엇인가에 질질 끌려 나가 관람하는 동굴 밖 세상 배신자의 무거운 발길이 다시 동굴 쪽을 향한다 땅속 깊이 위치한 동굴 입구 이 텁텁한 우주를 지하, 지상, 천상으로 3등분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도무지 어떤 놈들이냐?

 

* 플라톤의 공화국 제 7권에서

 

시작 노트: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고등학교 때 귓등으로만 듣던 플라톤의 동굴 벽 그림자를 다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그 스토리텔링은 이상한 공포심을 자극했다. 아직도 나는 젠체하는 플라톤이 무진장 무섭다. 우리는 모두 비유법의 내용보다는 비유법이 불러일으키는 말도 안되는 자유연상법의 즐거운 노예로 전락하는 것 같다.  

 

© 서 량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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