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꿈꾸는 문어

서 량 2022. 7. 8. 18:02

 

바다 밑바닥을 헤맨다

나는 바다다 나는 밑바닥

시시때때로 변하는 살 색깔

기암괴석 울퉁불퉁한 틈서리를

연신 파고드는 나는 연체동물

바다가 나를 윽박지른다 해도 설령

세 개의 심장*이 내 꿈을 지휘한다

살갗은 꿈 배경 빛깔, 재깍재깍 늘

형형색색 달라지는

전혀 문어가 아니면서 나는

올데갈데없는 문어야, 문어!

당신이 깜짝 놀라 눈을 깜빡하는 동안

발(足) 여덟 개가 들입다 요동치는

꿈이다 완전 나는

 

* 깊은 바다 밑 기암괴석 위에서 쉬는 꿈을 꾸면 몸이 돌 색깔이 되고, 먹이를 찾아 모래 위를 기어가는 꿈을 꾸면 몸 빛깔이 모래 색으로 변하는 문어는 심장이 셋이야, 셋! 하나는 커다란 머리를 지탱하고 둘은 요동치는 여덟 개 다리를 지휘한다.

 

시작 노트:
우연히 19년 전에 쓴 시,  '문어의 죽음'을 비판적인 마음으로 다시 읽고 피식 웃었다. 무슨 TV 프로그램에서 대구가 문어를 맛있게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이상한 시상에 사로잡혀 썼던 기억이 난다. 신문 기사를 읽는 기분. 그건 시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떠는 수다 같은 거였다. 이 시는 문어가 꿈을 꿀때 몸 빛깔이 변하는 유튜브 장면을 보고 썼다. TV, 유튜브 없이 어찌 사나 싶지.  

 

©서 량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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