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아침마다 생선 *아지 사려~ 하는 생선장사 구성진 목소리가 담장 밖에서 울리는 곳. 서울 성북구 수유리 수유동에 살면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장군의 수염을 읽었다. 수유리 장미원 근처에 보건탕이라는 대중탕이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4.19 기념탑이 있었다. 당신과 나와 이어령의 벌거벗은 청춘이었다.
새파랗게 젊으신 어머니는 짭짤한 아지 조림을 자주 하셨다. 신성일이 내 動物腦의 영웅이었고 이어령이 내 人間腦의 지도교수 역할을 맡은 격이다. 내 뇌리에서 생선 아지 비린내가 풀풀 났다.
2002년 4월 어느 날 맨해튼에서 이어령 선생이 제한된 숫자의 관객들에게 무슨 담론을 펼쳤다. 연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좀 잘난 척하고 싶었지. 정신과에서 말하는 transitional space, 과도기 공간에 대하여 질문을 올렸다. 이어령 선생은 “짧게 말하겠습니다” 하며 시작하시더니 오래동안 쉬지 않고 청산유수격으로 좔좔, 또 좔좔 말씀하셨다.
당신과 내가 험난한 과도기를 거친다. 가끔은 재미도 있다. 짧은 꿈처럼. 과도기 기억 보관소에 영원히 남을 영혼들. 소수의 멋진 영웅들과 이어령 같은 人間腦 지도교수 몇몇이 내 우글쭈글한 대뇌를 짙게 채색한다. 지금은 생선 아지도 이어령도 없다. 아, 나도 당신에게 교수 티를 내면서 짧게 말해주고 싶다. 심금에 맺힌 말이기에 하면 할 수록 끊임없이 탄생하고 부활하는 말들을.
*바닷물고기 ‘매가리’나 ‘전갱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시작 노트:
사람의 뇌를 동물뇌와 인간뇌로 구분하는 버릇이 생긴지 오래다. 다시 말해서 어떤 때는 당신이 동물로 어떤 때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둘 다 잘 합쳐진 혼합체라는 말은 이분법 사고방식의 노예인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추상이다. 이어령 석학이 2022년 2월 26일에 사망하시고 난 후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2002년 4월에 맨해튼에서 그를 만나고 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영혼의 전율 같은 것이 남아있다. 그는 한때 내 인간뇌의 수장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 량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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