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92. 마네킹

서 량 2021. 6. 28. 10:02

 

우연히 인터넷에서 구석본(1949~)의 시, “마네킹의 눈물”을 읽었다.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여름호)

 

얼굴을 뭉개버렸다 눈을 지우고 코를 지우고/ 입조차 깨끗이 뭉개버린 다음/.. 하며 시작했다가 나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뜻밖에도 당신,/ 나 아닌/ 당신의 원형이 떠오른다.//.. 실로 감동 어린 부분이다.

 

점포를 닫는 상가의 쇼윈도 바닥에 마네킹이 반질반질한 맨몸으로 팽개쳐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마네킹은 눈을 빤히 뜨고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나는 마네킹이 속으로 울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시인은 얼굴이 뭉개진 사람 모양의 물체를 과학적 시선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시인은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보는 재능을 발휘하여 모종의 신비한 메커니즘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인의 시선은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보다 초현실을 추구하는 예술적 경이감에 초점을 모은다. 세상의 모든 시는 초현실적 요소를 품고있다. 시도 그림도 절대로 현실을 따분하게 복사하지 않는다. 예술은 현실을 초월하면서 다른 하나의 현실을 창조한다. 우리는 그것을 ‘초현실, surrealism’이라 이름한다.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1896~1966)이 내세운 ‘초현실주의 선언(1924)’을 생각한다. 열네 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브르통은 파리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정신과 군의관으로 복무한다. 꿈과 현실 관계를 탐구한 산문집 “무모한 사랑 (Mad Love, 1937)”으로 각광을 받은 그는 미술 평론으로도 프랑스와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 때에도 그는 군의관으로 다시 복무한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 초현실을 추구하지만 늘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열정과 기개를 보였던 것이다.

 

브르통의 초현실은 당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1917)’ 논문에서 유래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리비도’에 매료된다. 따라서 그의 추종자들은 에로티시즘의 탐색작업에 몰두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Eros, 성애(性愛)’와 ‘Thanatos, 타나토스(죽음본능)’으로 양분한다. 인간은 삶과 다른 사람을 향하여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지향하는 본능을 보인다는 음산한 공식을 내세운다. 브르통은 ‘Eros’을 극찬함으로써 일부 비평가들의 ‘악성적인 낭만파, pernicious romantics’라는 혹평을 받는다. 염세주의는 늘 낙천주의를 헐뜯고 증오하는 법!

 

내가 벌거벗고 누워있는 마네킹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마네킹을 생명체로 보고 싶은 에로스 때문이었다. 마네킹이 죽은 물체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나 혐오감이 전혀 없는 마음이었다. 그만큼 나는 타나토스를 거부한다.

 

‘mannequin, 마네킹’은 15세기 네덜란드어와 불어에서 ‘작은 사람(little man)’이라는 뜻이었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서 쇼핑센터 진열장에 멋지게 서있는 마네킹으로 변했다. 이때 ‘man’은 ‘mankind, 인류’에서 처럼 ‘남자’가 아닌 ‘사람’을 뜻한다.

 

딸은 어릴 적에 조그만 사람 모습의 인형에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인형이 무생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인형의 마음을 얼른얼른 알아차리면서 재미나게 놀곤 했다. 그것은 초현실적 감응의 연속이었다. 딸은 인형을 통하여 저 자신과 놀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수시로 신에게 올리는 열렬한 기도 또한 초현실적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가끔 한다.   

 

© 서 량 2021.06.27

뉴욕 중앙일보 2021년 6월 3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491720 

 

[잠망경] 마네킹

우연히 인터넷에서 구석본(1949~)의 시, ‘마네킹의 눈물’을 읽었다.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여름호) 얼굴을 뭉개버렸다 눈을 지우고 코를 지우고/ 입조차 깨끗이 뭉개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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