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한참 어릴 적에 ‘The Last Unicorn, 마지막 유니콘’이라는 만화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다.
마법의 축복으로 평온한 숲에 살던 유니콘은 어느 날 자기가 마지막 남은 유니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니콘들의 아름다움을 독점하기 위하여 해거드 왕이 붉은 황소(Red Bull)를 시켜 바다 속에 모든 유니콘들을 감금했기 때문이다. 해변 드높은 성에서 흰 물거품 파도에 휩쓸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사는 킹 해거드!
유니콘은 친구들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마술사 슈멘드릭(Schmendrick, 유대어의 분파 이디시말로 ‘바보’라는 뜻)을 만난다. 산적들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둘의 여행길에 두목의 아내, 몰리(Molly)가 합세한다.
일행은 레드 불의 공격을 받는다. 슈멘드릭은 유니콘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주문을 외우다 지친 끝에 결국 마술이여, 뜻대로 하소서! 하며 외친다. 순식간에 유니콘은 미녀로 변신한다. 레드 불은 미녀를 해치지 않고 퇴각한다.
킹 해거드의 입양아로 성장한 왕자 리어(Lir)는 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 또한 왕자의 사랑에 화답한다.
그들은 괘종시계 속으로 들어가서 레드 불을 직면한다. 미녀가 유니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레드 불이 다시 공세를 취하자 슈멘드릭의 마법에 힘입어 그녀는 원래의 유니콘으로 되돌아온다. 그 순간 왕자가 용감하게 뛰어들지만 싸움에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유니콘은 힘을 내어 레드 불을 바다로 몰아넣는다. 수많은 유니콘들이 파도를 뛰쳐나와 해거드 성을 무너뜨리고 왕은 바다에 떨어진다. 유니콘은 뿔의 마법으로 왕자를 되살린다.
위기감이 사라지고 평온한 결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유니콘은 죽음에서 깨어난 왕자를 바라보며 “너를 기억해” 하며 절벽 위에서 속삭이며 사라지고 그녀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왕자에게 슈멘드릭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유니콘 중에서 후회가 무엇인지 아는 유니콘은 그녀 뿐이야. 그리고 사랑도!”
유니콘이 사람으로 지낸 시간은 실로 짧았다. 그 제한된 기간동안 왕자와의 사랑에 빠진 유니콘! 그녀는 후회와 사랑이 담긴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다.
영화 끝 무렵 극중 영웅 역할을 한 리어 왕자가 한 말, “스토리 도중에 해피 엔딩이 들어서지 못해요.”를 자주 떠올린다. - A happy ending cannot come in the middle of the story. 나는 이 말을 환자를 다독거리거나 내 자신을 무마시킬 때 곧잘 써먹는다. 얼핏 듣기에는 싱거운 이 말이 위로가 되고 힘을 실어준다.
더 소름 끼치도록 절실한 대사가 있다. “해피 엔딩은 없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기 때문에.” - There are no happy endings because nothing ends.
사랑을 이루지 못한 왕자는 자신의 역할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웅이야. 영웅은 옷감을 짜는 일이나 양조업처럼 하나의 직종에 불과해. 그래서 나름대로의 트릭과 요령과 다소의 기교가 필요하지.. (하략)”
영웅과 유니콘과 마술사와 전 산적 두목의 와이프 몰리는 다들 제 갈 길을 간다. ‘마지막 유니콘’은 어른을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신화와 영웅이 우리 시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남은 것은 섬광처럼 빛나는 언어의 마술! 그리고 몰리같이 다정한 마음씨와 예리한 직관의 향취가 맴도는 환상과 현실의 완충지대, 그 아늑한 과도기 공간(transitional space)이다.
© 서 량 2021.07.11
뉴욕 중앙일보 2021년 7월 14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53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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