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78. 대형사고

서 량 2020. 12. 14. 12:43

  

     - There’s a divinity that shapes our ends, Rough-hew how we will. (Shakespeare)

    우리의 끝을 다듬어 주는 신성(神性)있다네, 우리가 아무리 대충 마무리하려 해도. (셰익스피어) -

 

‘대형사고’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2020년 12월 중순 한국 정계 소식을 듣는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뒤흔드는 통에 지구인들은 초긴장 상태다. 숱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가운데 대형사고라는 말은 또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죽거나 상해를 입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대형 교통사고? 원전 사고? 화산 폭발?

 

아니다. 내가 듣는 대형사고라는 말은 물리적 사고가 아니다. 사회심리적 집단사고다. 네이버 사전은 대형사고를 “사람이 죽거나 심하게 다치거나 하는, 규모가 큰 사고”라 풀이한다.

 

상징과 비유를 통하여 물리적 언어로 심리상태를 묘사하는데 익숙한 우리는 복수의 칼날, 사랑의 불길 같은 어법을 쓴다. 대형사고라는 말은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고 올 사회적, 경제적 전망을 음산하게 가리키고 있다.

 

사고(事故) – ➀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➁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 교통사고의 경우는 ➀, 누가 입방정을 떨어서 다른 사람들이 심리적 해를 입는 경우는 ➁번 뜻이다. 요컨대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나쁜 일, 아니면 남을 해코지하는 나쁜 짓이다. 나쁜 일은 외부에서 터지는 반면 나쁜 짓은 사람이 하는 짓거리.    

 

어떻게 한 사람의 입방정이 한 사회에 대형사고를 일으켰다는 표현이 가능한가. 구체와 추상을 넘나들 줄 아는 사람들은 금방 공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이 얼마든지 큰 물의와 비판과, 그리고 실의와 절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방정맞다 -- ➀말이나 행동이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까불어서 가볍고 점잖지 못하다. ➁몹시 요망스럽게 보여서 불길하게 느끼거나 상서롭지 못하다.

 

‘방정’은 한자어 방정(方正, 언행이 바르고 점잖음)에서 유래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방정맞지 못하다’ 대신 생략법을 써서 ‘방정맞다’고 하는 격이다. 당신이 ‘쟤는 밥맛 없어’ 대신 ‘완전 밥맛이야’ 하며 반어법을 쓰는 것도 같은 경우다. 뭐? ‘재수 대가리’는 어떻냐고?

 

입방정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나도 당신도 섣불리 입방정을 떨었다가 재수 더러운 일이 일어나는 경험을 해 본적이 더러 있지 않았던가.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전망이라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했다가 며칠 후 확진자 수가 껑충 뛴 적이 있었다. 한두 번이라면 내가 말을 안 해요.

 

비슷한 뜻으로 ‘jinx, 징크스’가 있다. 며칠 전 가족에게 환자의 예후를 언급하면서 “I don’t want to jinx it by saying…, 이런 말을 해서 입방정을 떨고 싶지 않아요…,” 한 적이 있다. ‘jinks’는 라틴어로 주술(呪術)에 쓰이던 ’wryneck, 목이 삐뚤어진 새’ 이름이었고 나중에 부적이라는 의미가 됐다. 우리는 모두 미신적이다.

 

미국은 곧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실시될 전망이다. 전 지구촌이 코로나라는 대형사고에 시달리는 이 아픈 와중에 연거푸 터지는 한국의 정치적 대형사고를 접한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멀쩡한 사람들이 부리는 말썽이다.

 

햄릿이 5막 2장에서 호레이쇼에게 한 말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대형사고를 치는 마당에 그 실책과 비행의 뒤끝을 제대로 마무리해 주는 신성한 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 서 량 2020.12.13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2월 1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931786

 

[잠망경] 대형사고

There‘s a divinity that shapes our ends, Rough-hew how we will. (Shakespeare) -우리의 끝을 다듬어 주는 신성(神性)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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