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75. 한쪽은맞고다른쪽은때린다

서 량 2020. 11. 3. 12:51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았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타이틀이 흥미를 돋군다. 미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말과 생각의 맞고 틀림이 당신과 나를 잔뜩 긴장시키는 2020년 11월 초순이라 더욱 그렇다.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 네 축이 네 가지의 조합을 빚어낸다. 영화 타이틀은 현재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솎아내어 적폐청산이라도 하려는 듯 금방 덤벼들 기색이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다, 하면서 과거지향성 냄새를 풍기면 어떨까 하는데.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도 다 틀렸다! 또는 둘 다 맞다! 하며 선언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맞고 틀림에 대한 판단은 누가 내리는가. 나? 너? 시사비평가? 내로남불을 내세우는 정치인들? 역사편찬위원회?

 

영어의 ‘right, wrong’을 살펴본다. ‘wrong’은 전인도유럽어로 구부러졌다는 뜻이었다. ‘틀리다’는 ‘틀다’에서 온 말. 두 단어가 같은 생각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서양 없이 인류는 곡선보다 직선을 선호해 왔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직선은 정직(正直)하다. 곡선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사기성이 농후하다. ‘right’는 전인도유럽어에서 직선적이라는 의미였고 발음도 비슷한 ‘straight’와 말뿌리가 같다. ‘straight arrow, 직선적 화살’이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걸 당신은 알랑가 몰라.

 

맞는 답이라는 말, ‘correct’ 또한 라틴어로 교정(矯正)한다는 뜻이다. 스펠링이 매우 비슷한 ‘erect, 발기하다’의 형용사인 ‘erectile’과 ‘dysfunction, 기능장애’의 첫 알파벳을 합성한 ‘E. D.’는 비아그라 처방이 필요한 남성의 난처한 증상을 일컫는다.

 

언어학적으로 난처한 문제가 머리를 쳐든다. ‘맞다’에는 옳다는 의미 말고 외부로부터 어떤 힘이 가해져서 몸에 해를 입는다는, 즉 누구에게 구타를 당한다는 뜻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맞다’는 일치한다는 뜻도 지닌다. ‘앞뒤가 맞는다’는 말도 있지. 옷을 맞추고, 입도 맞추고! 남녀가 배꼽을 맞춘다는 우스개 말은 어떤가.

 

‘맞은편’도 수상하게 들린다. ‘마주 바라보이는 편’이라는 의미지만 ‘때린 편’의 반대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구타가 일어났다면, 맞은 사람이 있고 때린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이쯤해서 나도 홍상수 감독처럼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한쪽은맞고다른쪽은때린다’ 해야 될 성싶다. 맞다는 말이 이토록 난폭한 분위기를 띄우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나의 행동이 타당하고 과거의 언행은 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잔말 말고 현재의 나를 인정하라는 압력이 숨어있다. 결국 맞고 틀림에 대한 판단은 현존하는 권력이 내리는 것이다.

 

영화는 같은 스토리를 두 파트로 나눈다. 1부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부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소제목을 붙여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너끈히 성공한다.

 

홍상수 감독은 좋다, 나쁘다, 하는 감성에 신경을 쓰는 대신 맞다, 틀리다, 하는 이지적 자세를 취한다. 1부, 2부 다 ‘틀리다’로 끝나는 것을 보면 맞는 것에 감복하지 않고 틀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태도다.

 

당신이 오늘 선택하는 미대통령의 위상이 세월이 흐른 후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탄성으로 변할지 자못 궁금하다.  

© 서 량 2020.11.02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1월 4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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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맞고 때리기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았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타이틀이 흥미를 돋운다. 미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말과 생각의 맞고 틀림이 당신과 나를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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