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快)’라는 발음하기 힘드는 우리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쾌청, 쾌적, 쾌차 같은 기분 좋은 말들이 떠오른다.
쾌락, 쾌감, 쾌재, 쾌속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상쾌, 유쾌, 흔쾌, 통쾌, 경쾌, 완쾌, 명쾌, 하는 식으로 말끝에 붙는 쾌자 돌림은 왜 그리 많은지.
이런 단어들은 다 한자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즐거움, 기쁨, 시원함이 고작이라서 별로 다채롭지 못하다. 중국인들에 비하여 체질적으로 우리의 정서가 단순하기 때문일까.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행동원칙을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과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으로 나눈다. 전자는 타고난 본능에 가깝고 후자는 자연환경과 사회적 압력에서 비롯된다.
쾌락은 질서를 무시하고 현실은 질서를 강요한다. 쾌락이 아이들 마음 속에 숨어있다가 틈만 나면 튀어나오는 충동이라면 현실은 가족의 생계와 안존을 위하여 뼈빠지게 일하는 부모의 근면과 희생이다. 쾌락과 현실은 수시로 충돌한다.
지구상 모든 국가의 여당과 야당은 서로 결이 다른 쾌락과 현실의 애증관계 또는 너저분한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치사스러운 싸움을 한다. 이념의 추구는, 에헴, 쾌락과 현실의 쌍곡선을 애써 감추고 포장하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요. 솔직히.
경상도 민요 ‘쾌지나 칭칭 나네’의 어원에 대한 설이 분분하다. 2005년 북한의 한 매개체를 인용한 한국 몇몇 신문은 옛날 경상도 사람들이 임진왜란 시절 우리를 침범했던 ‘가등청정’이 쫓겨가는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을 내세운다. (칭칭=청정?)
다른 설도 있다. 옛날 말로 고기를 ‘괴기’ 또는 ‘괘기’라 했고 ‘칭칭’은 ‘총총’ 할 때처럼 많다는 뜻이라서 경상도 어부들이 바다 속에 물고기가 많다고 즐거워하며 여럿이 고함치던 풍속에서 왔다는 사연. ‘하늘에는 별이 총총~♪’ 하는 부분과도 부합한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결성한 ‘조선어학회’의 후신, ‘한글학회’가 2015년에 주장한 내막은 또 이렇다. 우선 ‘쾌지’는 ‘콩깍지’가 변한 말이란다. 그리고 칭칭(=총총, 주렁주렁). 그 노래는 ‘콩깍지가 주렁주렁하네’로 시작되는 ‘콩 타령’이라는 설.
내 학설은 이렇다. 고등학교 고문(古文)시간에 배운 조침문(弔針文)의 첫 구절, ‘오호 애재(哀哉)라’의 반대말이 쾌재(快哉). 그래서 ‘쾌지나 칭칭 나네’는 이유야 어쨌든 ‘기쁨이 많이 나오네’라는 소리침이다. (快=기쁨, 哉=어조사)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하더니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하며 크게 감탄하는 저 수상한 밀양 아리랑의 쾌감이다. 뻐근하게 단순하다. 우리는 밉던 곱던 이처럼 단순한 체질을 연년세세 계승해 온 것인지.
내가 아침 저녁으로 다루는 지독한 병세의 정신질환 병동환자들은 폐쇄병동이 강요하는 현실원칙에 시달린다. 성격적으로 미숙한 환자들은 쾌락원칙을 금단 없이 추구한다. 때로는 자기의 쾌락을 가로막는 간호사와 의사를 심하게 때린다.
병동에서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그들의 아픈 현실을 큰 소리로 강조할 때마다 말끝에 ‘please’를 붙인다. ‘if you please’에서 처음 두 글자를 빼놓은 관용어로 ‘네가 만약 기뻐(즐거워) 한다면’, 하며 말끝을 장식한다. 현실은 슬퍼(哀哉)도 기쁨(快哉)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전파하는 격이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노래한다. “쾌지나 칭칭 나네~♪”
© 서 량 2020.01.26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월 29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97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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