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353. Name Your Poison!

 

약(藥)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본다. ‘풀 초’ 밑에 ‘즐길 락’이 합쳐진 모습! 풀을 즐긴다고? 영어 슬랭으로 ‘weed, 잡초’라 하고 우리가 대마초라 부르는 마리화나가 떠오른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탓이다.

 

약에는 의약(醫藥)이라는 뜻 말고 독(毒)이라는 뜻도 한자사전에 나온다. 대마초를 피우면 당장은 릴랙스 할지 모르지만 정신건강에는 독이 된다. 당신 아들이 시험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대마초를 피우면서 편안한 기분에 빠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1960년대에 전 세계를 흔들었던 팝송 ‘Love Potion No. 9’을 기억하는가. ‘사랑의 묘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 이때 ‘potion’은 ‘물약’을 뜻한다. 제목을 ‘사랑의 드링크제’라 하면 어떨까.

 

‘potion’과 ‘poison(독약)’은 발음도 거의 같을 뿐더러 13세기에 라틴어와 불어에서 똑같은 뜻으로 쓰였다. 15세기에 이르기까지 근 200년 동안 인류의 물약은 독약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에 물약을 만들 때 살균이나 멸균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 드링크제의 역사가 아직도 현대영어에 남아 있다. 오늘 밤에도 미국 어느 술집에서 바텐더가 손님에게 ‘무슨 술을 들겠느냐’는 뜻으로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Name your poison’. 직역하면 ‘독약 이름을 대세요’. 좀 쿨하게 들리지 않는가?

 

‘약이 오르다’라는 표현이 우리를 혼동시킨다. 약(藥)기운이 오르는데 왜 짜증이 나는가. -- 네이버사전은 이렇게 풀이한다. “원래 고추, 담배 등의 자극성 약초가 잘 성숙하여 독특한 자극성 성분이 생기는 것을 ‘약이 오르다’고 하던 것이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의 성질을 나타나게끔 되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독한 기운이 뻗친다는 면에서는 서로 통한다.”

 

‘독이 오르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굴욕을 당한 후 독이 바짝 올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장면을 그려보라. 독이 오르는 것이 약이 오르는 것보다 더 좋은가, 아니면 막상막하인가.

 

‘drug’이라는 단어가 15세기에 탄생했다. 중세기 독일 북부에서 약초, 양념, 향신료를 건조하게 보관했다는 사연이다. 그래서 ‘drug’은 ‘dry ware (건제품)’의 발음이 변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그러면 그렇지! 걸핏하면 독성이 생기는 물약에서 바삭바삭하게 말린 약초로 인류의 제약산업이 시작됐다는 사연이 참 갸륵하다.

 

‘약발이 오르다’는 약이 효력을 발휘(發揮)한다는 뜻. 약발 뿐만 아니라 말발, 글발, 끗발, 깃발, (눈에) 핏발, 화장발, 조명발, 등등 ‘발’이 접미사로 들어가는 말이 수두룩하다. 이때 ‘발’은 힘과 기세를 뜻한다. 대전발 영시 오십 분~♪ 하는 기차의 힘찬 출발(出發)처럼. 그런 ‘발’은 ‘빨’, 하며 경음으로 발음해야 제격이다. ‘오리발’ 할 때처럼 부드럽게 하면 전혀 ‘말빨’이 안 서요, 안 서.

 

약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13세기 물약처럼 세균이 득실거려야 독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복용량을 어기고 과다복용을 하면 치사량에 이르는 사태가 독약이나 다름없다.

 

약 뿐만 아니다. 과식을 거듭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과속운전, 하다못해 도가 지나친 사랑조차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해가 기우는 회포를 풀기 위해 송년파티에서 춤을 추다가 심장에 이상이 와서 쓰러지는 사례에서도 과음과 과격한 동작의 컴비네이션은 엄청난 독이 된다.

 

© 서 량 2019.12.29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월 2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906601

[잠망경] Name your po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