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56. 귀신 이야기

서 량 2020. 2. 10. 12:24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열연하는 2014년 영화 ‘루시’를 기억하시는가. 오랜 진화과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 두뇌의 10%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추정에서 갈등이 펼쳐지는 사이파이 영화를.

 

그녀는 두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약 봉지를 강제로 몸에 수술로 삽입 당한 채 약을 운송 한다. 그리고 사고가 터져서 몸속 비닐 봉지가 파열하여 두뇌활동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악당 최민식에 강렬하게 대항하는 그녀는 두뇌의 사용영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초능력이 나타난다. 두뇌의 40%가 기능을 발휘할 때 그의 생각을 읽고, 60%를 넘자 악당들의 공격을 생각만으로 제어하고, 나중에는 과거와 현재를 앉은 자리에서 두루두루 살펴보는 신비한 힘이 생긴다.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

 

불교의 6신통(神通)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수행 도중에 일어나는 이 초능력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여 이렇게 설명해도 괜찮겠지 싶다.    

 

천안통(天眼通) - 모든 것을 샅샅이 볼 수 있는 신통력.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비디오 채팅을 하는 일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먼 거리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

 

천이통(天耳通) –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제전화를 거는 행동은 쳐주지 않아요. 꿈 속에 애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을 당신이 듣는 것도 천이통의 예라고 할 수 없다.

 

타심통(他心通) - 타인의 마음을 안다. 에헴, 이 기능은 나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단, 내가 묻는 말에 환자가 고분고분하게 대답할 때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정도.   

 

숙명통(宿命通) – 자신과 남의 전생(前生)을 아는 초능력. 전생이라는 명제를 상상조차 못하는 나로서는 수긍하지 못할 항목이다. 점쟁이가 미래를 예언하는 신통력은 아주 다른 이야기지만.

 

신족통(神足通) -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신통한 힘. 칼(KAL)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상황이 아니다. 신라의 고승 혜초가 축지법으로 땅을 훨훨 날아다니며 인도에 다녀왔다고 했다는 설화라면 모르지만.

 

누진통(漏盡通) -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끊고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지혜.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언에 공감하는 나는 꿈도 못 꾸는 경지. 가장 어려운 관문이라는 소문이다.

 

신통력은 ‘귀신’과 통하는 힘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신(神)이라는 한자어는 ‘귀신 신’ 말고 다른 해석이 없다. 게다가 귀신에는 무슨 일에 통달했다는 의미도 있지요. 시쳇말로 ‘그 놈은 정보수집에는 아주 귀신이야’ 하는 표현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우리가 아니던가. 

 

‘神’은 ‘보일 시(示)’와 ‘펼칠 신(申)’이 합쳐진 모습. 특히 申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모양새다. 옛날 중국사람들은 하늘 신(귀신)이 번개를 내렸다고 믿었다 하니 신도 귀신도 실로 무서운 존재다. 전에도 말했듯이 ‘God’의 말 뿌리는 ‘good’이다. 서구의 신은 좋다는 감성에서 유래했고 동양의 신은 귀신처럼, 한 밤중에 치는 번개처럼, 무섭고 섬찟한 존재다.

 

스칼렛 요한슨은 막판에 100%의 뇌기능이 생겨 누진통에 돌입하면서 이승에서 사라진다. 그녀와 악당 데빵 최민석을 거꾸러뜨린 탐정이 사방을 살펴보며 ‘Where are you?’ 하고 묻기가 무섭게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뜬다. ‘I am everywhere’. 그녀는 불교수행을 하지 않고도 약의 힘을 빌려 6신통을 완결한 것으로 보인다. 귀신이 된 것이다.

 

© 서 량 2020.02.09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2월 12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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