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48. 4단7정

서 량 2019. 10. 21. 11:35

그날은 바람이 좀 심하게 부는 2019년 청명한 시월 중순이었다. 관광 가이드가 조선 시대의 퇴계 이황이 16세기 중반에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가르쳤다고 가볍게 말한다. 7정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리는 감성이다.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심(). 이런 원초적 감성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4단은 네 가지의 단서, 시초라는 뜻이다. 단초(端初)라 하면 얼른 이해가 가고 영어로 ‘clue’라 옮기면 그럴 듯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남의 불행을 아파하고, 나와 남의 나쁜 점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고, 남에게 양보하고, 나와 남의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가짐이다. 이 네 가지 인간의 심성이 없는 사람 또한 사람이 아니다.

 

졸업 50주년기념 국내 관광여행에 다녀왔다. 강행군 비슷하게 급하게 방문한 여러 명소 중에서 경북 안동 도산서원이 떠오른다. 한국 지폐 천 원에 그려진 이황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직업의식이 앞을 가린다. 조선시대를 뒤흔들었던 성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차원에서 매우 정신과적이다. 성리학은 곧 심리학이다.

 

나는 지금껏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을 학습해 왔고 그 원칙을 환자 치료에 적용한다. 정신장애를 위궤양이나 고혈압같은 신체의 질병으로 보지 않고, 남들과의 관계에 이상이 생긴 데서 왔다고 본다. 사람의 정신적 고통은 대인관계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하나같이 마음 심()으로 끝날 뿐만 아니라 모두 남과의 관계에 포커스가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기 바란다. 퇴계도 대상관계이론을 추구한 것이다.

 

4단 중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측은지심에 가장 가까운 서구적 컨셉은 ‘empathy’. 우리말로 감정이입(感情移入), 혹은 공감(共感)이라 한다. 대인관계의 핵심요소에 해당되는 현상이다. ‘empathy’는 희랍어로 아픔 속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남과 공감하려면 남의 아픔 속에 들어가야 한다. 공감이 없이는 심리상담이 불가능하다.

 

반면에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은 당신과 나 사이에 모종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심리상태에는 남이 하는 나쁜 짓을 미워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남을 비판하라는 격렬한 메시지가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가르침과 불교적 자비심이 무색해지는 성리학의 교훈이다. 퇴계 사상은 무분별한 평화에의 갈망을 권장하지 않는다.

 

이율곡과 이황의 제자들이 서로 자기네 스승이 더 뛰어난 학자라고 침을 튀겨가며 우기다가 결국 스승의 밤일 광경을 점검했단다. 아주 이상한 팩트 체크다. 이황은 당시 소문대로 매우 격렬한 자세를 취했다는 이야기!

 

다음날 이황의 제자들이 선생님은 어찌 그리 짐승처럼 일을 치르십니까, 하며 다그친다. 퇴계는 율곡이 밤일을 너무 조심스럽게 하니 후사를 늦게 얻을 것이라고 응답한다. 사실 현재의 율곡 후손은 이황의 후손보다 희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사에 낮 퇴계와 밤 퇴계는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황은 결코 학문만 파고드는 꽁생원이 아니었다. 7정이 갑남을녀 모두가 빠지는 값싼 감성이라면 4단은 삶을 향한 사나운 정열과 정제된 야성의 발현이라는 상념에 젖는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지나간 반 백 년을 유추하면서.

 

© 서 량 2019.10.20 

--- 뉴욕 중앙일보 2019 10 2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