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치료했던 환자를 기억한다. 독일계 여성환자가 눈을 깜박거리며 자기 엄마를 회상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 때 엄마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전쟁에 나간 아들이 전사했다고 통지한다. 신문을 읽은 친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엄마를 위로한다. 몇달 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 엄마는 그곳 신문사에 또다시 아들의 죽음을 통보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녀가 이사 온 집을 방문하여 깊은 애도를 표명한다. 엄마는 같은 짓을 세 번째 반복했는데 더 이상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정신 이상이 아니었냐고 환자는 묻는다. 나는 ‘Pseudologia Fantastica, 환상적 거짓말’이라는 용어가 생각났지만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pseudo’는 희랍어로 ‘가짜’라는 뜻.
맞다. ‘환상적 거짓말’이 정확한 우리말 번역이다. 1891년에 독일의 한 정신과의사가 처음 보고했는데 현대 영어로 ‘pathological lying, 병적 거짓말’이라 한다. ‘환상적 허언’이라는 번역도 있다. 작금의 미국에서 ‘pathological lying’은 일상어로 쓰이고 있다.
나는 허언(虛言)이라는 용어에 반기를 든다. 허언에는 거짓말 말고도 ‘빈말’이라는 뜻이 있다. 당신이 지인에게 무심코 ‘우리 언제 점심이나 합시다’ 하는 것이 빈말이다. ‘빌 허(虛)’는 허무주의적 언어다.
매해 영국 컴브리아 시에서 열리는 ‘World’s Biggest Liar Competition, 세계 가장 큰 거짓말장이 경연대회’를 한국에서는 ‘세계 허언 대회’라 한다. 모욕감을 피하기 위하여 ‘거짓말장이’를 ‘허언’이라 바꿔치기한 것도 허위(虛僞) 번역이 아닌가 하는데. 이 거짓말 올림픽은 정치인과 변호사의 참가를 금지한다. 이들은 맨날 거짓말만 일삼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경쟁하면 안 된다는 것. 더더구나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라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유행어 ‘리플리 증후군’을 찾아봤다. 나는 40여 년을 정신과 전문의로 미국에서 살면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작가 퍼트리셔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는 1955년에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라는 범죄 심리소설을 썼다.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치밀한 거짓말과 살인을 거듭해서 자신의 정체를 바꾸고 화려한 결혼을 한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1960년에 개봉된 ‘태양은 가득히’에 나오는 미남배우 알랭 들롱의 찌푸린 얼굴 장면을 아련히 회상한다.
심층심리의 음습한 밑바닥에 톰 리플리 같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향한 애수가 깔려 있다는 당신과 내 성향을 부정하지 못한다. 허우대가 멀쩡한 미남이라면 병적인 매력을 느끼기도 한단다. 정신과 진단명의 허울을 뒤집어쓴 이 사람들은 머리 좋은 범죄자들일 뿐. 사회는 그들을 ‘sociopath, 반사회자’ 또는 ‘psychopath, 변질자’라 부른다. 그냥 쉽게는 ‘사이코패스’라 한다. 도둑놈을 도둑놈이라 해야지 도둑성격 장애자라 하는 건 도통 말이 안 되지.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과 진단명이 아니다. 이 철 지난 유행어를 방불케 하는 병적 거짓말장이들이 어제도 오늘도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거짓말 대회에 참가를 거부당한 직업적 거짓말장이들, 변호사와 정치인들의 허위진술을 듣는 2019년 9월 9일에 술렁이는 사이코패스들의 대열을 예의주시한다. 그대들은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서 량 2019.09.09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9월 1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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