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피아노, 그리고 혼잣말

서 량 2019. 5. 28. 20:04


5월 끝자락을 바람이 쓱

훑어 지나가네요 5월이 숲으로 재빨리

잦아드는 걸 보고 있어요 다시는 5월이

날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정말

 

가슴이 푹 파였지만 피아노는 대충 정갈한 옷차림이다 피아노는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은 클라리넷에게 눈길을 던진다 자, 준비가 다 되셨겠지요 하는 신호다 둘 다, 한 순간 둘 다 긴장한다 누군가가 이거 뭐 이래, 하며 자리를 박차며 일어난다 피아노가 하는 말을 아무도 듣지 못한다 어깨 곡선이 한참 부드러운 피아노 자신은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얼추 알고 있는 눈치지만

 

피아노를 감싸주던 벽이 많이 부숴졌어요

피아노가 숨어있던 세포막이 다 찢어졌단 말이야

피아노 건반을 말끔히 핥고 지나간 불길의 흔적을 보세요

피아노가 수명을 다했으니 해체 전문가들이 우르르 덤벼들어

피아노를 완전 해체해야 되는게 아닌가 몰라 정말

5월 끝자락이 내게서 멀어지기 전에 어서어서

5월 바람이 숲으로 사라지기 전에

 

© 서 량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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