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서 성격장애의 치료 방법이 중구난방으로 많다는 사실은 성격장애를 치료하는 뾰족한 방법이 별로 없다는 증거다. 당신이 낭랑한 목소리로 정신질환을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썩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하다못해 약을 먹으면 잘 낫습니다, 하는 위로의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약이 고질적인 정신병 증세를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지만 성격장애 치료에는 큰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오죽하면 근래에는 성격장애 패턴에 대한 흥미진진한 묘사에 매달리기보다 일개인의 성격장애가 얼마나 지독하게 남들과 사회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해코지하느냐는, 그 격렬성에 착안점을 두자는 의견이 분분할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또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에서처럼 일찍이 글쟁이들은 소설에서 성격장애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성격장애가 정식으로 정신의학 진단명 자격을 획득한 해는 1952년. 성격장애는 대부분의 보험회사들이 정신질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에서 식인(食人)을 일삼는 정신과의사 한니발 렉터도, 여자들을 죽여서 그들의 피부로 자기가 입을 옷을 재단하는 살인마 버팔로 빌도 다 극단적인 성격장애 환자들이다. 그런 천인공노할 성격장애의 경우에 일반 정신과의사는 환자를 전문가에게 넘겨버림으로써 골치 아픈 환자를 회피한다. 이쯤 해서 형사사법체계가 냉큼 개입되기 때문에 정신질환 환자와 범죄인의 경계도 불투명해진다.
심리학자 마샤 리너핸(Marsha Linehan, 1943~)은 1980년대 말에 ‘변증법적 행동치료 (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 DBT)’를 창안하여 성격장애 치료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드라마틱하고 요란하게 남들을 괴롭히는데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경계성 성격장애'에 유효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DBT’의 첫 자 ‘dialectical,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당신도 알다시피 헤겔의 변증법에 나오는 철학적 명제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세우며 난감한 지경에 빠졌을 때 그 상반되는 힘에서 어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불현듯 태어난다는 견해다.
‘DBT’는 의사 측에서 제공하는 ‘validation (인정, 공감)’ 절차가 중요하다. 반면에 환자 측에서는 자신의 미운 점 고운 점을 송두리째 받아드리는 ‘radical acceptance (철저한 받아들임)’ 과정이나 참선을 할 때 같은 마음상태, ‘mindfulness’를 열심히 연마하는 수순을 밟는다.
‘mindfulness’을 사전은 ‘마음 챙김’이라 풀이한다. ‘매 순간 순간의 알아차림’이라는 설명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자아심리학에서는 자기관찰(self observation)이라 하는데, 자신을 향한 걱정, 공포, 증오, 분노 같은 유별난 감정을 떠나서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그냥 ‘염두에 두는’ 평온한 마음가짐이다. 똑 같은 개념을 불교에서는 ‘염(念)’이라 일컫는다.
‘mindfulness’를 자기인식(self awareness)이라고도 한다. 이때 관찰과 인식의 대상은 절대로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당신과 나는 자신을 향한 심리치료사가 되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심산이다.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남을 사랑하는데 있다면 선불교(禪佛敎)는 참선을 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자기관찰을 통한 대오각성을 목표로 삼는다. 나는 성격장애를 치료함에 있어서 환자의 마음상태는 물론이고, 환자를 상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염두에 두는 일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의 방법 치고는 참으로 미흡한 마음자세로 보이겠지만.
© 서 량 2018.12.3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12월 5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럼| 329. 무서운 피터팬, 그 매정한 (0) | 2019.01.14 |
---|---|
|컬럼| 327. 무서운 게 쿨하다고? (0) | 2018.12.17 |
|컬럼| 325. 머리 좋은 한국인 (0) | 2018.11.19 |
|컬럼| 324. 이빨에 깃든 영혼 (0) | 2018.11.05 |
|컬럼| 323. 세 개의 벽 (0) | 2018.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