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와 영혼에 대하여 대화를 나눴다. 잇몸에 마취주사를 맞고 치과 시술을 받는 중이었지만 나는 모처럼
추상적인 화제에 몰입했다. 입을 벌린 채로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신기하다.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1953~)는 하버드 대학교수를 역임했던 신경외과 의사. 2008년에 급성뇌막염으로 6일간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이 돌아온 후 2012년에 그 경험을 주제로 “Proof of Heaven”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은 한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고, 이듬해에 한국에서도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near-death experience(NDE)’에 대하여 강연을 하고 책도 더 쓰고 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으로 보인다.
‘NDE’를 우리말로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서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 눈부시게 밝은 빛, 평온한 마음 상태, 또는 주마등같이 스치는 자신의 과거 등등이 그들이 체험한 공통적인 요소로 손꼽힌다.
치과의사는 영혼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나는 말을 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그저 동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고개를 좀 끄덕인다.
대뇌피질은 대뇌의 윗부분을 차지하는 신경세포의 집합체로서 생체 내부와 외부환경에서 오는 자극을 인지하고 분석한다. 전뇌(前腦)라고도 불리는 대뇌가 마비되어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모종의 인식능력은 살아있다. 나는 영혼이 전뇌뿐만이 아니라 중뇌(中腦)에도 존재한다는 학설을 고수한다. 중뇌는 체온, 수면같은 생체의 기본조건 외에 기억, 집중력, 동기의식, 기분 등에 관계하고 쾌감을 중재하는 도파민을 생산하는 매우 정신과적인 장소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종교적 개념일까, 철학적 명제일까. 정신과적 측면인가. 혹은 생명현상? 그렇다면 개나 고양이나 꽃도 영혼이 있다는 말인가.
‘soul’은 독일어의 전신에 해당하던 언어에서 ‘바다, sea’라는 뜻이었다. 고대 북유럽인들은 사람의 영혼이 바다에서 오고 사후에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다. ‘soul’에는 10세기경 ‘죽은 사람의 넋(spirit)’이라는 의미가 처음 생겨났다.
‘spirit’은 13세기 중반에 고대불어에서 쓰이기 시작한 라틴어에 뿌리를 둔 말로서 ‘숨, 호흡, 신의 숨결’이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귀신(ghost)이라는 의미도 파생됐다. 카톨릭에서 성부, 성자, 성신 할 때 성신을 ‘holy spirit’라 한다. 성스러운 귀신!?
‘ghost’가 전인도유럽어에서 ‘깜짝 놀라다, 무서워하다, 흥분하다’는 뜻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무서워하고, 흥분하는 정서를 한꺼번에 느끼는 것이다. 밤늦게 공포영화를 손에 땀을 쥐고 보는 당신과 나의 습성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수년 전 임플란트를 할 계획으로 왼쪽 위 어금니를 덜컥 빼 놓고 지금껏 차일피일 그냥 놔 뒀더니 그 아래 어금니가 위쪽 허공을 향하여 나무처럼 쑥쑥 자라났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깜짝 놀라 흥분한다.
잇몸 마취가 풀린 후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치과의사의 지혜로운 의견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 왼쪽 아래 어금니에도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뇌, 중뇌는 물론 오장육부, 혈관, 머리카락, 그리고 이빨에 이르기까지 사람 몸 어디에도 영혼이 없는 곳은 없다. 그 소소한 영혼들과 대뇌피질이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메시지들을 주고 받는지 궁금하다.
© 서 량 2018.11.04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11월 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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