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29. 무서운 피터팬, 그 매정한

서 량 2019. 1. 14. 20:17

 

“한 아이를 제외하고 어린애들은 모두 자란다. 그들은 일찍이 자기네들이 자란다는 것을 알고 웬디도 그걸 알았다. 그녀는 두 살 때 어느 날 정원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엄마한테 뛰어간 적이 있다.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고 '오, 네가 영원히 지금 같았으면!' 하며 소리쳤다. 이것이 모녀 사이에 꽃을 두고 생긴 일의 전부였지만 그때 웬디는 스스로 자라야 된다는 것을 깨달었다. 당신도 두 살이 넘으면 기어이 그걸 알게 된다. 두 살은 끝의 시작이다.”

 

피터팬의 첫 문단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번역해 보았다. 시(詩)와 이야기는 시작 부분에서 전체의 흐름과 윤곽을 암시한다.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아이로 알려진 피터팬은 절대로 성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힌다. 피터팬은 사실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여섯 살 때 만화책에서 피터팬을 처음 만났다. 어린애들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부러웠고, 악어 뱃속의 시계에서 재깍재깍 소리가 나면 갈고리 팔 후크 선장이 무서워 벌벌 떠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정신과의사가 되고 난 다음에야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시간에 대한 경각심과 죽음의 공포를 상징하는 대목이라는 것을 깨달었다.

 

병동 환자들에게 피터팬 때문에 흥분한 적이 있다. 한 환자가 피터팬은 팅커벨과 웬디를 둘 다 사랑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피터팬이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논설을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팅커벨은 요정의 몸으로 가냘픈 날개를 팔딱이면서 피터팬을 짝사랑한다. 피터는 어느 날 자신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웬디의 옷장에서 찾는다. 그림자를 다시 몸에 붙이지 못해서 울고 있는 피터에게 잠에서 깨어난 웬디가 왜 우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림자를 피터의 양쪽 발에 정성스레 바늘로 꿰매 붙여준다. 이건 남녀의 당당한 사랑이 아니라 모자(母子)간에 일어나는 장면이다. 피터는 오직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던 철부지 어린애였다.

 

요정과 인디언과 인어와 해적들이 득실대는 네버랜드(Neverland) 섬에서 피터는 악당 후크 선장과 싸워 그를 악어 입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곳에 사는 “길 잃은 아이들 (lost boys)”이 웬디 가정에 입양되지만 피터는 홀로 섬으로 돌아간다. 매해 봄마다 “봄 청소(spring cleaning)”를 하기 위해 웬디를 데리려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웬디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피터를 잊고 결혼하여 딸을 낳는다. 딸 제인은 자꾸 피터팬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다가 급기야 그의 손을 잡고 밤하늘을 뚫고 네버랜드를 들락거리는 엄마 역할을 한다. 웬디는 왜 엄마는 더 이상 날지 못하냐고 물어보는 제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더 이상 즐겁고, 순수하고, 매정한 어린애가 아니란다.”

 

우리말로 ‘베드로’라 하는 예수의 수석 제자 이름도 ‘Peter’인데 고대 영어로 바위라는 뜻이었고 1902년부터 ‘penis’라는 슬랭으로도 변했다. ‘panic’과 어원이 같은 ‘Pan’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목신(牧神)’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Peter Pan’에는 무서운 바위, 무서운 음경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피터팬의 맨 끝 문단은 또 이렇다. –- “웬디는 오래 전 일 때문에 머리가 희어지고 다시금 몸이 작아졌다. 평범한 어른이 된 제인은 마가렛이라는 딸을 두었다. 피터는 잊어버릴 때를 제외하고 매해 봄 청소 시기가 되면 마가렛을 네버랜드에 데려가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마가렛이 어른이 되면 그녀도 딸이 생길 것이며, 그 딸이 다시 피터의 엄마가 될 것이고, 그런 일들이 줄곧 반복될 것이다. 그들은 즐겁고, 순수하고, 매정한 어린애들이니까.”

 

© 서 량 2019.01.13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1월 1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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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무서운 피터팬, 그 매정한

한 아이를 제외하고 어린애들은 모두 자란다. 그들은 일찍이 자기네들이 자란다는 것을 알고 웬디도 그걸 알았다. 그녀는 두 살 때 어느 날 정원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엄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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