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1901~1981)이 설파한 “응시(gaze)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 생후 한두 살짜리 아기가 물끄러미 거울을 응시한다. 그는 호기심에 매료되어 애를 태우다가 거울 속 영상이 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아기는 나중에 거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지하면서 그 사람의 눈에 비춰진 자기 모습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좋은 버릇을 키운다.
아기가 기어가는 동안 의자에 부딪치지 않는 것도 당신이 전봇대와 충돌하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것도 다 이 “응시” 덕분이다. 라캉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강력한 힘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를 응시할 때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같은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그의 저서 “임상의학의 탄생(1963)”에서 “의학적 응시”라는 개념을 가르친다. 환자는 진료소에서 검진을 받으면서 의학이라는 거창한 지식을 대변하는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이때 “응시”는 단순한 시각적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힘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을 조율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엊그제 직장 동료와 함께 어느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만나 주위를 둘러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들이 여러 테이블에 다소곳이 앉아있었지만 실내가 묘지처럼 적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주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개를 숙인 채 각자가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나오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나라(Laputa, Floating Island)”가 떠오른다. 그곳의 귀족들은 늘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하게 기울인 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말을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인들이 막대기 끝에 달린 바람주머니로 귀와 입을 두들겨 줘야 한다. 심오한 상념에 빠져서 하인을 대동하지 않고 달랑 혼자 외출했다가 그들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기를 잘한다. 스마트폰에 심취한 현대인들이 텍스트를 찍으며 걸어가다가 맨홀에 떨어지거나 달리는 차에 부딪치는 사태와 너무나 흡사하다.
스마트폰 없이는 한시도 살지 못하는 우리들은 무엇에 몰두하며 지내는가. 하인들에게 바람주머니로 얻어맞는 그들과 우리의 공통점은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왕성한 두뇌활동으로 사색을 추구하는 그들에 비하여 컴퓨터 테크놀로지 중독환자들인 우리는 대화의 부재 현상과 소외감에서 ‘SNS’의 거미줄에 얽혀 몸부림친다. ‘SNS’는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default setting (기본 설정)’으로 삼는다.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보고싶은 욕망과 결탁한다. 급기야 노출증과 관음증은 야합한다. 욕망의 주변에 두려움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노출증의 대담성은 수줍음의 안쓰러움과 일심동체가 된다.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초미니 스커트처럼 감추고 싶은 욕망과 자지러지게 공존한다.
‘gaze(응시하다)’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노르웨이나 스웨덴 말로 ‘입을 벌리고 바라보다(gape)’, ‘멍청하게 바라보다(gawk)’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응시(凝視)의 ‘응’도 옥편에 ‘엉길 응’이라 나와있고 응고(凝固), 응집(凝集)에서처럼 ‘한 덩어리가 되면서 굳어지다, 얼어붙다’는 뜻이란다.
사람이 사람을 응시한다는 것은 입을 딱 벌리고 멍청하게 바라보며 두 영혼이 한 덩어리로 굳어지며 얼어붙는 시적(詩的) 상황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눈빛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안간힘이면서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끌림이다.
© 서 량 2018.06.24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6월 2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32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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