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경 아메리카 온라인(AOL)에서 나는 인터넷 시(詩) 동호회의 열성 멤버였다. 켄터키 주 어느 멋진 여류시인과 문자를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남편이 방광암 진단을 받았는데 치유가 되도록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차마 무신론자라는 말을 못하고 그러마 했다. 나는 기도를 전혀 하지 않았고 몇 달 후 그녀 남편은 사망했고 그녀는 내게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수년 후 다시 인터넷에서 그녀와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대화가 전 같지 않았다. 그녀 남편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나는 평생 기도를 해 본적이 없다. 가끔 남이 하는 기도에 실눈을 뜬 채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비기독교인이다.
정신과 월간지에 실린 “종교와 영성(靈性, spirituality)과 건강의 긍정적인 면과 불리한 면”이라는 글을 읽었다. (Psychiatric Times, 2020년 7월호)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종교인들의 종교의식과 기도(祈禱, prayer)의 효능에 대한 담론이다.
글은 마가복음 16장 18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를 인용하면서, 2012년에 발표된 정신과 논문에서 종교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확률은 종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10퍼센트 밖에 안된다는 보고를 소개한다.
2016년 암과 심장병에 대한 연구에서는 7만 4천여명의 여성들을 16년 동안 추적했다. 그들 중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의식에 참가하는 여성들이 전혀 참가하지 않은 여성들보다 암과 심장병으로 인한 치사율이 33 퍼센트나 낮다는 소식이다.
CNN 기자는 4월 20일 마스크 쓰기를 반대하며 정부에 항거하는 펜실베이니아 시위대에 참가한 트럭에 쓰여진 커다란 표어, “Jesus is my vaccine, 예수는 나의 백신”에 대하여 언급한다.
가족과 친지 중 코로나에 걸린 환자가 쾌차하기를 기도했는데도 환자가 사망한다면? 더 자주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할 걸 그랬다, 하는 회한에 사로잡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절실한 애원이 거절당했다는 실의에 빠지거나 분노하는 감성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 팀이 발표한 2006년 보고서를 읽는다. 10년에 걸쳐 1,800명의 심장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기도의 힘’에 대한 연구 결과! 기도를 열심히 해준 환자들의 합병증이 기도를 해주지 않은 환자들보다 약간 더 높았다는 것이다. 기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환자의 마음이 심장에 부담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기도(祈禱)는 한자어 사전에 ‘빌 기’에 ‘빌 도’라 나온다. 정화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하는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빎’은 순 우리말이다.
‘pray, 기도하다’는 13세기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서 ‘구걸하다(beg)’와 ‘신에게 간청하다(entreat)’라는 뜻이 공존했다. 전자는 거지를, 그리고 후자는 빎을 연상시킨다. ‘빌어먹다’도 구걸해서 먹는다는 뜻이지!
종교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기도가 주관과 객관이 양분법으로 구분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설파한다. 나와 남, 나와 신, 같은 이분법 공식으로는 전혀 기도발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도의 힘을 빌려서 남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기도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챙기고 다스리며 돕는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절차가 아닐까 한다.
© 서 량 2020.08.23
--- 뉴욕 중앙일보 2020년8월 2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596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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