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1970년도 영화 ‘러브 스토리’의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말은 작년 미국영화협회에서 선정한 100개의 유명한 영화대사 중에서 13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한 바 있다.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무슨 행동이건 용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어딘지 참 뻔뻔스러운 구석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시인이자 작곡가면서 기타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다가 아깝게도 마흔 살에 정신병자에게 사살당한 비틀즈의 존 레논 (John Lennon)은 “Love means having to say you're sorry every fifteen minutes. (사랑은 15분만에 한 번씩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러브 스토리’의 절대로 미안해 하지 않는 태도와 비틀즈의 시시때때로 미안해 하는 자세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느 날 당신은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기독교인의 집에 부부동반으로 초대를 받을 것이다. 좋은 포도주라도 한 병 들고 현관을 들어서서 조심스럽게 거실을 둘러보면 한쪽 벽에 궁서체로 단정하게 써있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무심코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마호가니 테두리 액자에 소장된 사랑의 정의를 소상하게 읽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것이 바로 한겨울에 새벽기도를 가려다가 빙판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친 연세 지긋한 친척을 기억하는 당신이 익숙해진 ‘개역한글판’ 성경 구절이다. 반면에 최근 ‘공동번역 개정판’에는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라고 사랑을 짤막짤막하게 정의 내린다.
7년 동안을 57명의 석학들이 히브루어와 희랍어를 땀 흘려 번역해서 1611년에 초판을 내 놓은 킹제임스 바이블(King James Bible)에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Charity suffers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s not; charity vaunts not itself, is not puffed up, (자선은 오래 고통을 받고 친절합니다. 자선은 시기하기 않습니다. 자선은 자랑하지 않고 부풀리지 않습니다. -- 필자 역)
같은 대목을 1901년에 출판된 미국표준성서협회(American Standard Bible)에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and is not jealous; love does not brag and is not arrogant,’라 했다.
근 400년의 세월이 흐른 사이에 성서 번역가들은 ‘자선(charity)’이라는 단어를 ‘사랑(love)’으로 바꿔 놓았다. 그렇다. 우리가 들먹이는 ‘사랑(love)’의 원천은 ‘자선’(charity)이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전서는 사실 남녀간의 사랑이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정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자선(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고진감래의 뒷끝을 장식하는 성취감이라기보다 오래 받는 고통이다. 사랑은 아픔이다.
킹제임스 바이블의 초판 인쇄의 잉크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 현세에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동양적 개념의 ‘홍익인간 (弘益人間)’ 이라는 아가페(agape) 사상을 벗어나서 에로스(Eros)의 애욕을 추구하는 삶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미안하다면서 용서를 구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저 뻔뻔스러운 ‘러브 스토리’ 의 후예가 된 것이다. 사랑은 ‘영원히’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는 것이라는 주관적 해석에 매달리면서.
© 서 량 2006.10.16
-- 뉴욕중앙일보 2006년 10월 18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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