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의 어원을 공부했다. 고려대 김민수 교수 편 <우리말 어원사전>은 이 말이 어원 미상이라 전제한 다음, 참고로 [알(核, 精)]+다[어미]라 설명하고 얼[精神]이 '알'과 모음교체 관계에 있다는 추론을 내놓는다. 정신과 의사인 나로서 이만저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 아니다. 얼이 쑥 빠져있는 동안 만큼은 누구도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알고 깨닫는다는 것은 일단 또릿또릿한 정신상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어원사전>은 또 경희대 서정범 교수가 알[卵]이 '알다'의 어원이라 주장한 것도 거론한다. 알맹이, 알몸, 알통, 알토란, 알건달, 알깍쟁이, 알궁둥이 같은 말들은 하나같이 사물의 핵심과 진수, 즉 진짜 알짜배기를 일컫는 말들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상의 핵심에 접근하는 몹시 어려운 체험이다.
때에 따라 안다는 것은 어떤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격언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구약 창세기에서 신이 인류에게 선악에 대한 지식의 열매(the fruit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도 앎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였다는 현대적 해석이 가능하다. 식자우환(識字憂患)도 같은 맥락이다.
1611년에 영어로 처음 출간된 킹제임스성경의 창세기 4장 1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And Adam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그리고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와 동침하여, 이브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았고...] (필자 譯) --- 이 문구에 나오는 'knew'에 주의를 집중하기 바란다. 직역으로는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를 '알았다'라고 옮겨야 한다. 우리말 성경도 이 부분을 '동침했다'고 번역한다.
'know'는 고대영어에서 사물의 유사성과 상이점을 식별한다는 의미였다가 12세기에 '성교하다'라는 뜻도 생겼다고 문헌은 가르친다. 우리말에서도 '이성(異性)을 알다'는 이성의 육체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상의 핵심에 접근한다는 몹시 어려운 체험이다. 무엇을 안다는 일은 개념적인 임신을 초래하는 일이다.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나 상관이 무슨 말을 하면 '알겠습니다' 하며 미래형 용법을 쓰면서 완곡하게 응수한다. 그것은 단순한 인지(認知) 상태를 넘어서 앞으로도 진지한 반추를 거듭하여 숙지(熟知)하겠다는 겸허한 정신상태에서 나오는 말이다. 반면에 당신이 무슨 말을 했을 때 당신의 상관은 '알았다'라고 금방 대꾸함으로써 생각의 완료를 알려주는 윗사람의 오만한 태도를 다짐하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안다는 말을 하면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 직설법을 피하고 싶을 때 'you-know-who (-what, -where)', 한다. 그래서 말끝마다 'you know', 하며 부사구가 자꾸 들어가는 말투가 있는데 경계해야 할 말 습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말에서도 '그런데 말이지', '그래서 말이지' 하며 '말이지'를 되풀이하는 말버릇이 비슷한 예다.
누구와 맞장구를 치고 싶을 때 'Don't I know it!?' 하는 관용어가 있다. 상대방의 진심을 잘 이해한다는 알짜의 공감의식을 전해주고 싶을 때 튀어나오는 간투사. 이 말을 '누가 아니래!?' 라고 능청을 부리듯이 번역할까, 아니면 '진짜!!' 하며 느낌표를 두 개 넣어 호들갑을 떨면서 할까 고민 중이다. 이렇게나 어렵구나. 상대를 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 속생각을 상대에게 알려준다는 것이.
ⓒ 서 량 2018.04.15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4월 18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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