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14. The Road of Excess

서 량 2018. 6. 11. 06:40

2018년 6월 초,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가 지난 며칠 후, 매사추세츠 주의 소도시 첼름스포드(Chelmsford)의 한 부동산 업소는 시당국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업소 앞뜰 잔디밭에 조그만 성조기 200개를 꼽아 놓은 것이 문제였다. 경고 내용은 성조기의 과도한(excessive) 숫자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부동산 업소를 운영하는 부부는 성조기 300개를 회사 앞에 추가로 꼽아서 총 500개의 국기가 초여름 바람에 팔랑거리게 했다. 부부는 TV 인터뷰에 출현하여, 시당국이 지적한 “상업적 목적”이 아닌 “애국심”이라는 의도에서 7월 4일 독립기념일까지 그 조그만 성조기 500개의 숫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심정을 차분하게 밝혔다.

 

거대한 사이즈, 많은 숫자, 커다란 목소리, 너무 빨리 달리는 하이웨이의 스포츠카, 매우 춥거나 더운 날씨, 심하게 짠 음식, 등등, 주변의 모든 과도한(excessive) 자극에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극이 과격해지는 순간 꼼짝없이 압도당하거나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유기적 생물체의 타고난 생리다.

 

강한 자극에 대한 생리적 예민성은 우리가 갓난아기 시절에 체험했던 트라우마의 누적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유아기는 생물학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기! 엄마 또한 커다란 목소리로 멋모르는 아기를 주의시키거나 혹가다 꾸짖기까지 하면서 아기의 안전을 위하여 안절부절하는 시련을 겪는다.

 

아기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몸이 집채만 한 거인이었으며 때로는 목소리가 왕방울처럼 크고 행동이 빨랐던 것이다. 정신분석에 입각한 아동심리학에서 어린애들이 꾸는 악몽 중 꿈속에 나타나는 괴물은 아버지를 포함한 엄격한 부모를 상징할 때가 많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우리는 강한 것을 무서워한다. 그 부동산 업소 앞뜰의 수많은 미국 깃발이 도날드 트럼프의 과격한 애국심을 연상시킨다는 이유가 시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미국을 위하여 항상 강경노선을 취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얼마나 많은 언론이 그를 미워하는지 당신은 익히 알고 있을 텐데.

 

6월의 셋째 일요일, 아버지 날이 다가온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만큼 뛰어난 두뇌를 타고 났지만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그리스 신화의 이디푸스(Oedipus)를 생각한다. 테베(Thebes)의 삼거리에서 사막을 건너는 대상과 통행의 우선권 때문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대, 아버지를 죽인 이디푸스! 비극은 단순한 경쟁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동이 강하고 거대한 어른을 향한 나약한 청년의 공포심에서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각도의 심리 분석을 곰곰이 음미한다.

 

‘excess (과잉, 과도, 지나침, 무절제)’에는 14세기경 고대불어로 ‘extravagance (사치, 낭비, 화려함)’ 혹은 ‘outrage (격분)’라는 뜻이 있었고, 라틴어로는 ‘일탈’이라는 의미였다. 7백년 전쯤에 프랑스 사람들은 과도한 것을 화려한 것으로 간주하는 너그러움이 있었던 반면, 이탈리안들은 같은 심리 상태를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보았던 엄격함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의 화가이자 낭만파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명언을 한 번 더 인용한다. -- “The road of excess leads to the palace of wisdom.” -- 전에 ‘the road of excess’를 ‘과잉의 길’이라 직역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넣어서 이렇게 옮긴다. -- “무절제의 길이 지혜의 궁전에 도달한다.”

 

 

© 서 량 2018.06.11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6월 1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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