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08. Me Too

서 량 2018. 3. 19. 03:59

2017년 10월경부터 성희롱이며 성폭력을 고발하는 취지로 미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Me Too Movement'는 2018년 3월 현재 아직 우리 영한사전에 오르지 않았지만, 위키백과에 '미투 운동'이라 나와 있다. 순수한 우리말로 '나 또한 운동'이라 번역하면 어떨까. 한자어를 넣어서 '나 역시 운동'은?


'me-tooism'은 19세기 끝 무렵에 생긴 말로서 '미투 운동'과 완전히 다른 뜻이다. 네이버 영한사전은 '모방주의, 대세 순응주의'라 풀이한다. 정당의 정책이나 한 회사의 제품 따위를 묘사하는데 이 말이 자주 쓰인다.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을 짧게 줄여 '미투'라고도 하고 '나도 당했다'로 옮긴다. 미투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수많은 한국여성들의 정신적 아픔과 피해의식에 깊은 동정심이 솟는다. 


반면에 '미투이즘'은 '나도 그러겠다'라는 의도에서 출발한 자발적인 행동이다. 똑같이 '미투'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자의(自意)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그 의미의 차이가 엄청나다. 정신과에서 강조하는 우리를 지배하는 행동심리의 바닥에 깔린 자율성(自律性)의 유무가 쟁점이 된다.


'me too'에는 문법적으로 이상한 구석이 있다. 엄밀히 말해서 'I too'라고 말해야 한다고 우기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전화를 걸면서 친한 사이에 “저에요, 나야.” 할 때, “It's I.” 하지 않고 “It's me.”라고 나직하게 말하는 것도 어딘지 수상하다. 상대가 “I love you, 사랑해.” 하면 그 응답으로 “Me too, 저도요, 나도.” 하며 속삭이는 어법은 또 어떤가.


세상 모든 언어의 인칭대명사에는 격(case)이 있다. 주격, 소유격, 목적격 따위가 영어에서 거론된다. 일인칭의 세 가지 격, 'I', 'my', 'me', '나는', '나의', '나를(에게)' 같은 엄격한 규정을 따르지 않고 'Me too'는 주격을 포기한 채 목적격을 주어로 쓰고 있다. 이것은 마치도 '저에요, 나야' 하지 않고 '저를요, 나를' 하고 신원을 밝히는 태도다.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하라는 건가.


그렇다. 대담하고 뻔뻔스러운 서구인답지 않게 얘네들은 자신을 부각하지 않고 상대방이 자기를 하나의 목적으로 삼는 것을 원하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It's I.”라는 퉁명스러운 발언보다 “It's me.”라는 구어체가 훨씬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때 나는 상대방의 목적, 목표, 또는 도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한다. 당신이 내게 '저에요' 하는 대신 '저를요' 하는 순간 당신 자신의 자의(自意)는 홀연히 사라지고 내 임의(任意)가 짐짓 군림할 것이다.


'미투 운동'을 '나도 운동'이라 옮기면 밋밋하고 어설프지만 '나 또한 운동'이라 하면 무게가 잡힌다. 'too'를 힘주어 번역한 효과가 나는 것이다.


'too'는 원래 고대영어에서 'to'였다가 16세기에 'o'가 하나 더 붙었다고 전해진다. 바야흐로 'to'라는 전치사가 'too'라는 부사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우리말로도 '나도'처럼 조사가 딸린 것보다 '나 또한'이라는 부사의 위력이 더 확실히 느껴지지 않는가.


'too'에는 '너무나'라는 부정적인 뜻도 있다. 누가 “This is too much for me!” 하며 내뱉듯이 외쳤다면 그것은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라는 말이다.


'me too'가 가볍게 쓰일 때 '저도요, 나도'에는 상대와 합세하는 동류의식은 물론이고 소속감(sense of belonging)마저 풍긴다. 그러니까 한 여자가 당신에게 'I belong to you'라고 말한다면 당신 또한 서슴지 않고 'Me too'라 응답할 일이다.


ⓒ 서 량 2018.03.18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3월 2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