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윈(Lewin: 1896~1971)은 아동 심리 발달의 구강성(口腔性, orality)에 있어서 ‘Oral Triad (구강 3대 요소)’라는 개념을 발표하여 정신분석에 큰 공헌을 끼쳤다. (1950)
‘구강성’은 생후 2년 동안 젖먹이 아기가 겪는 심리과정을 뜻한다. 어린 아기는 모유(母乳)는 물론 손에 닿는 모든 물체를 입에 넣으려 한다. 유아기 이후 입과 직결되는 행동 패턴은 평생토록 우리를 지배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남는다.
루윈은 구강 3대 요소로 ‘wish to eat (먹고 싶은 욕망)’, ‘wish to be eaten (먹히고 싶은 욕망)’, 그리고 ‘wish to sleep (자고 싶은 욕망)’을 손꼽았다. ‘wish’를 소원이나 소망이라 하지 않고 욕망이라고 번역한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아동 심리에 걸맞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함이다.
먹고 싶은 욕망을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아기는 모유라는 엄마의 일부분이 아닌 엄마 전체를 흡수하고 싶어하는 원색적 생명체다. 주체와 객체를 분별하는 정신적 기능이 전혀 없는 상태다. 내가 엄마를 먹고 싶은 욕망은 엄마가 나를 먹는 거대한 환상과 중첩된다. 성인 남녀의 사랑에서 육체와 정신을 서로가 탐닉하는 심리도 젖먹이 아기의 감성으로 보면 상대를 먹고 상대에게 먹히는 무분별한 기쁨과 뿌리가 같다.
구강 3대 요소 중 마지막 항목인 ‘자고 싶은 욕망’도 남녀의 애정행각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젖먹이 아기가 포만감에 젖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그는 원초적 모태로 돌아간다. 자궁 속에서 생존하던 평화로움에 귀의한다.
내 병동에 38살 백인 남자가 입원해 있다. 언변이 뛰어나고 허우대가 멀쩡한 그는 기분이 저조할 때 자기 팔을 칼이나 뾰족한 물체로 긁어서 상처를 낸다. 상흔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왼쪽 아래팔을 보여주면서 10대 이후 지금껏 대충 칠 팔십 번 자해(自害)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진술하는 성격장애 환자다.
어느 금요일 퇴근 시간쯤 그는 배가 고파 죽겠으니 의사의 권한으로 간호사에게 말해서 빵과 오렌지를 먹게 해달라고 내게 요청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날 밤 팔과 손목을 또 긁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30분 후에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잠시 배고픔을 참으라는 충고는 아무 효력이 없다. 철저하게 자해를 할 결심이라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먹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다 해서 병원직원들을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우선 자신부터 괴롭히는 법에 능한 그에게.
‘eat’는 고대영어에서 그냥 단순히 먹는다는 뜻이었지만 1893년에 선취하다, 독식하다, 농단하다 같은 추상적인 의미도 생겨났다. 그래서 ‘What’s eating you?’ 하면 무엇이 당신을 잡아먹느냐, 즉 무슨 고민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우리말에서도 당신과 나는 마음도 먹고, 욕도 먹고, 감동도 먹고, 징계도 먹는다. 이렇듯 쉴새 없이 먹기만 하는 우리들의 정서가, 에헴, 혹시 비만증에 허덕이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먹방에 대한 외신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진수성찬을 잔뜩 쌓아 놓고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혼자서 맛있게 먹는 유튜브 방송들이 2009년부터 시작됐다 한다. 왜 한국인들은 남이 게걸스레 음식을 먹는 장면에 열광하는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남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먹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는 이른바 대리만족 때문이다, 그게 아니다 하는데.
남이 음식을 먹는 것이나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먹는 일이 곧 먹히는 일이라? 맞는 짓이 때리는 짓? –- 주체와 객체를 좀처럼 분별하지 못하는 성격장애 환자들이 병동 안에도 그리고 밖에도 득실대는 2018년이다.
© 서 량 2018.05.13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5월 1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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