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05. 안녕, 그리고 다시 안녕!

서 량 2018. 2. 5. 10:22

미국 의사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치면서 "What's going on?" 하고 말한 적이 있다친한 사이에 하는 말로 무슨 일 있어하는 뜻이었다그랬더니 이 친구가 "Should there be anything fierce going on? (무슨 일이라도 격렬하게 일어나야 되는 법이냐?)" 하고 되물어보는 통에 킥킥대고 웃었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이란 평온무사함을 목표로 삼는다주말에 정신과 입원병동에서 별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월요일 아침에 받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내가 당신에게 "별일 없지?" 하고 물어본다면 그건 당신의 평온무사함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사(人事)라는 한자어를 풀이하면 '사람의 일'이다사람의 일이란 이를테면 남을 사랑하거나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서로간 인사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사람끼리 마주하거나 헤어질 때처음 만나는 남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그리고 상대에게 받은 은혜를 치하할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즉 인사다.

 

'greeting (인사)' 'greet (인사하다)'의 명사형. 본래 고대영어로 '만지다건드리다'는 뜻이었다우리말보다 직접적이고 육체적이다그들은 초면에 통성명을 하는 대신 일자무식하게 상대를 만지고 건드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요사이 이성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성추행으로 덜커덕 고소당할 판이지만.

 

'greet'는 옛날에 '울다울부짖다'라는 뜻도 있었다는 사실이 괴이하다이 말의 전인도유럽어에 해당하는 단어는 '소리치다'는 말이었다현대영어 'cry'에 울다, 소리치다, 하는 이중의미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한번 상상해 보라고대의 서구인들이 서로 처음 인사를 나눌 때 긴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을 향하여 덤벼드는 강아지처럼 서로 울며 소리치는 장면을.

 

우리의 현대적 인사방법은 어떤가처음 보는 사람에게 '처음 뵙겠습니다하며 너무나 뻔한 발언을 하는 우리들게다가 우리는 왜 초면에 '잘 부탁 드립니다' 하는가도대체 뭘 부탁하겠다는 말이냐.

 

미국인들이 초면에 나누는 인사는 'Nice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말고 별다른 표현이 없다옛날식 영어 'How do you do?'가 있기는 하지만 20세기 이후로는 거의 아무도 이 말을 하지 않는다.

 

'Hello!' 또한 19세기 말에 전화가 발명된 이후로 모든 이들의 인사말이 됐다가 근래에 짤막한 'Hi!'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Hello!' '여보세요!'처럼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간투사지만 상대가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비아냥거리는 말로도 쓰인다때때로 우리의 '여보세요!' 상대방이 못마땅해서 시비를 걸 때 나오는 말처럼.

 

우리말의 안녕하와이 원어의 'Aloha', 그리고 이태리어의 'Ciao'는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 똑같이 쓰이는 말이다만나고 헤어짐이 사람의 정신상태에 똑같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세련되게 들리는 이태리어 '차우'는 원래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Schiavo!)'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금방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잘 부탁한다고 능청을 떠는 우리의 자기비하적 발상과 매우 비슷하다.

 

셰익스피어의 말 'Parting is such sweet sorrow. (이별은 참 달콤한 슬픔입니다.)'가 생각난다그 슬픔을 이기려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헤어지면서 또 보자고 말한다그러나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을 끝장낼 때 하는 말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상대에게 하는 말이제는 일본어 자체가 영어로 쓰이는 말, 'Sayonara! (사요나라!)' 또한 어딘지 끌리는 데가 있다. 


© 서 량 2018.02.04

-- 뉴욕중앙일보 2018년 2월 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