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06. 누가 누구를 속이나?

서 량 2018. 2. 20. 08:07

'hallucinate (환각을 일으키다, 환각에 빠지다)'는 17세기 중반쯤 통용되던 라틴어로서 마음과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하는 말투를 뜻했다.


'hallucinate'는 그보다 반백 년 앞선 17세기 초에 고대영어에서 속인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쓰이지 않는 용법이지만 마치 공룡의 화석처럼 말 속 깊은 곳에 우람한 뼈대가 묻혀있다. 15세기경 라틴어에 등장한 'delude (착각하다, 망상에 빠지다)' 또한 처음에는 속인다는 뜻이었다. 환각도 착각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참한 결론이 나온다.


환각이나 착각의 속임수에 대한 질문이 터진다. 속이다니! 누가 누구를 속인다는 말인가. 지금껏 나는 내 환자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환청에 시달리고 망상증에 빠진 환자들은 자기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우스개 소리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고의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욕도 못한다.


고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한자어로 속일 사, 속일 기를 써서 사기(詐欺)라 한다. 옥편은 '남을 속여 착오에 빠지게 하는 위법 행위'라며 법적인 각도를 취한다. 


'속일 사(詐)'가 말씀 언(言) 변이라면 '지을 작(作)'은 사람 인(人) 변이라는 점에 유의하시라. '말'로 사기를 치지만 예술작품은 '사람'이 만든다는 등식에 얼른 이해가 갈 것이다. 말에는 정신병자건 사기꾼이건 거짓말이 많지만 사람 자체는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오묘한 진리가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곁말이지만, 어린애들이 재미나 심심풀이로 하는 '장난' 또한 '작란(作亂, 어지러움 만들기)'이라는 한자어에 유래했다는 점에 대하여도 당신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기를 기대한다. 장난이 아니다.

 

위니캇(Winnicott 1896-1971)이 정신분석에 기여한 영국의 전통적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이쯤해서 적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주창한 이론 중 핵심개념인 거짓 자기(false self)와 참 자기(true self)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 줬으면 한다. 

 

시인이면서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위니캇은 거짓 자기를 생존본능과 직결된 행동 패턴으로 설명했다. 그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자신 속에 내재하는 잠재력이나 자연발생적인 욕구 따위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거짓 자기 성향이 심하면 심할 수록 자기기만과 타인을 향한 전략술에 능한 삶을 살게 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보면 일구이언(一口二言)이 뛰어난 정치가 대열에 끼어들어 한동안 각광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서도. 

 

당신과 나의 참 자기는 여간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생명체의 알맹이들이 질기고 단단한 표피로 보호받는 속성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참 자기는 입에 발린 위선과 슬로건으로 중무장한 약삭빠른 현실대응이 아니라 존재의 건실한 연속성을 위한 개인적 현실감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모르고 하는 거짓말로 자신과 상대를 속이는 경우와 일부러 하는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경우를 분별하고자 한다. 환각과 착각에 빠진 내 환자들은 전자에 속하겠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의적 사기행각은 어찌하나? 이른바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 불리우는 놈들!

 

그들에게 오냐오냐하는 정신과 치료는 거짓 자기를 강화시킬 뿐이고 두말 없이 감옥에 보내는 것 말고는 다른 구제 방법이 딱히 없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것은 사기꾼이 자신의 거짓 자기에 회의를 느끼고 깊은 우울증에 빠졌을 때 치료의 가능성이 좀 엿보인다는 것이다.

 

ⓒ 서 량 2018.02.19--- 뉴욕 중앙일보 2018년 2월 2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