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정신병동에 붙임성이 좋다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거나 오며 가며 내 팔이나 어깨를 툭툭 치는 버릇이 있는 환자가 몇몇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남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신체 접촉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외 없이 환자 쪽에서 먼저 접촉을 원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몸을 건드리고 싶어 하는가. 실존주의적 차원에서 하는 자신의 존재확인이라는 해석이 과연 맞을까. 왜 우리는 상대와의 짤막한 악수 한 번만으로 모자라서 아쉬워하는가 말이다.
악수는 기원 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시작된 인사방법으로서 서로가 손에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점검하는 절차였다고 전해진다. 상대방이 나를 해코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마음이 놓이는 심리상태. 그것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이 신변의 안전을 검증하는 예식이었다.
로마인들은 악수를 하면서 상대가 옷 속에 칼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서로 팔을 어루만지며 은연중 철저한 검색을 했다고도 한다. 중세기 무사들은 상대의 팔을 만지는 대신 오른팔 전체를 흔들면서 숨겨진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절차에서 중력에 의하여 흉기가 아래로 떨어질 것은 뻔한 이치! 'hand-hold'라 하지 않고 'handshake'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7년 12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 중국 참모들과 악수를 나누는 과정에서 외교부장의 팔을 건드리며 친근감을 표시하자 그도 화답 하듯 대통령 팔을 툭 쳤는데 이것이 대통령을 향한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기사를 읽었다. 두 남자가 비록 지금이 로마시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안전과 상대방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서로를 슬쩍 체크했다는 사연이다. 시대착오적 무의식의 흐름이 빚어낸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나는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을 추구하면서 40여 년을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해왔다. 그 이론을 반백 년 전쯤 미국에 설파하고 심어준 코넬의대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밑에서 수련을 받았고 그것을 주제로 논문을 여러 편 썼다. 성격장애 환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 공허감(Object hunger)'라는 개념도 창안했다.
대상 공허감이란 자신의 능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힘에 의존하거나 그런 안온한 분위기를 남에게서 추구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다.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내 환자의 마음에는 내가 자기를 붙잡아주기를 원하는 공허감의 욕구가 깔려 있다.
나는 대상 공허감에 시달리는 환자를 향하여 되도록 내 자신의 감정표현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삼가는 법을 익혀왔던 것 같다. 환자와 의사라는 주어진 여건이 어린아이와 어른이라는 역할을 강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어로 공복 또는 공허감이라는 뜻의 'hunger'는 범어와 전인도유럽어의 말뿌리에서 '갈증'이라는 뜻이었다. 12세기에 들어서서야 '욕구'라는 뜻이 파생됐다 한다.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水)이 생명의 원천이니만큼 공허감에는 엄청나게 원초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 한 나라의 대통령과 다른 나라의 외교부장의 심층심리에는 대상 공허감이라는 짙은 안개가 숨어 있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감만큼 상대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 또한 강했으리라. 너나 할 것 없이 어린아이처럼 상대가 어른답게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대통령과 외교부장이건 대통령과 국민 사이건 누가 더 어른다운 감성을 가져야 될까? 하는 대상관계 이론에 입각한 심각한 질문이 떠오르는 다사다난했던 대한민국의 2017년 끝자락이다.
© 서 량
2017.12.25
-- 뉴욕중앙일보 2017년 12월 2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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