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73. 위대한 미국

서 량 2016. 11. 13. 14:50

2016 11 8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의 캠페인 슬로건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 이 단순한 슬로건이 미국에 대한 좌절과 열등의식에 시달려 온 가난한 중산층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논평을 읽었다.

 

'great'는 사전에 1.위대한 2.훌륭한 3.4.많은 5.좋은,이라 나와있다. 결국 위대하거나, 훌륭하거나, 크거나, 돈 같은 것이 많은 것을 누구나 좋아한다는 말이 된다.

 

트럼프의 슬로건에서 'great'는 위의 다섯 가지 뜻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일개 평민으로서 그런 조건을 다 성취한 위대한 국가의 국민으로 살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great'는 고대영어에서 '크다, 높다, 튼튼하다, 두껍다, 거칠다'는 뜻이었다. 거칠다는 해석은 말이 쌍스럽거나 행동이 난폭하다는 의미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위대함에는 쌍스럽고 난폭하다는 뉘앙스가 도사리고 있다.

 

'great'와 거의 같은 뜻으로 고대불어와 라틴어, 그리고 현대독일어와 영어에 'gross'가 있는데 이 말은 'gross income, 총수입' 할 때처럼 총괄적으로 큰 전체를 일컫는 중립적인 뜻도 있지만, 역겨운, 징그러운, 조잡한, 같은 나쁜 의미가 더 많다. 역시 커다란 것은 역겹고 징그럽다는 느낌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렇듯 언어는 복잡다단한 이중성을 내포할 때가 많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상태가 이중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말한 'Make America great again'은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의 긍정적인 뜻 외에도 미국을 거칠고 조잡하게 만들겠다는 저의가 어원학적으로 숨어있는 것이다.

 

'위대(偉大)하다'는 한자어로서 클 위, 클 대로 옥편은 풀이한다. 클 대() 'great'와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갖는 것이 참 신기하다. ''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또는 교만하다 같은 풀이도 나온다. 큰 것은 자극의 강도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환영 받지 못한다. 마침 또 대통령, 할 때 ''도 클 대자다.

 

'크다() '는 중세기에 '하다() '와 공존했다. '하다'의 많다는 뜻이 우리 현대어에 남아있는 예로 '쇠털같이 허구한 날' 할 때 나오는 '허구한'이라는 표현이다. 이때 '허구한' '하고많은'과 같은 말이다.

 

크다는 뜻으로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에 'big, large, huge, grand' 따위가 있다.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은 역시 'big'. 조지 오웰의 획기적인 소설 <1984>에 나오는 'Big Brother'에 대하여 당신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Big Brother'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보호적이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의 일거일동을 면밀하게 감시하는 독재정부를 의미한다.

 

'grand'도 이상한 말이다. 'grand piano' 또는 'grand prize, 최우수상', 할 때는 위대하다는 뜻이지만 'grand'의 형용사를 쓴 'grandiose delusion, 과대망상'은 내가 정신과의사로 매일 마주하는 정신병 증상이다.

 

'humongous, 괴물처럼 커다란'라는 말이 1972년에 미국슬랭으로 태어났다. 'huge, 커다란' 'monstrous, 괴물 같은'의 합성어다. 예컨대 하마처럼 커다란 엉덩이를 묘사하려면 'big butt'보다 'humongous butt'이라 해야 더 감칠 맛나는 영어가 된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monstrous'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던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커다란 괴물처럼 무시무시하게 크게 미국의 굼뜬 경제를 부흥시키기를 열렬히 소망한다.

 

© 서 량 2016.11.13

-- 뉴욕중앙일보 2016년 11월 1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